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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Apr 29. 2019

직장 상사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법

잔소리는 언제나 짜증이 난다. 부모, 형제, 친구, 애인 할 것 없이 대상에 크게 관계없이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잔소리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든 잔소리 중 하나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일 것이다. 나의 인사 및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사의 요구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합당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상사에 대한 인정이나 존중이 부재할 때, 그의 잔소리는 짜증을 넘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말은 기술이다. 내가 속한 조직의 상사 A는 보통 때에도 본인만의 특별한 말하기 기술이 있다. 그는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말까지도 특유의 ‘질문 화법’을 통해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잔소리를 할 때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모호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상대방의 대답에 꼬투리를 잡는 식이다. A는 꼬투리가 잡혀 무안해하거나 당황스러워하는 부하 직원들을 보며 스스로가 높은 위치에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은 그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적잖은 모욕감을 느꼈다.


최근 저녁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사 시작 전부터 뭔가 심사가 꼬인 듯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A는 “이제부터 잔소리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업무와 관련된 혹은 그 밖의 잡다한 안건들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 가지 부탁사항을 전달했다. 


“내가 잔소리를 할 때 기분 나쁜 것을 표현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그 모욕감을 얼굴로 표현하지 말고, 조금은 바보같아 보이더라도 허허 웃으며 대응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A는 덧붙였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어느 정도씩 성질이 나쁘고, 이를 감추지 못한다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감정 노동도 사회생활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의 말처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쁜 성질’을 드러냈다.


회식 자리의 해프닝은 A의 말도 안 되는 잔소리로만 끝나지 않았다. 저녁이 흐르고 술기운이 오를 무렵 팀원 중 누군가는 그의 부당한 요구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얼굴도 곱다”며 농담처럼 진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순간 A의 얼굴은 벌게졌고 분위기는 잠시 어색해졌지만 그날 우리는 “서로 노력하자”는 다소 훈훈한 결론을 지으며 회식자리를 파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는 그의 잔소리는 며칠이 지나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헛소리로만 남지 않았다.


우리는 상사의 잔소리에 어떤 얼굴로 대처해야 할까? 상사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직장생활에서 오는 상처를 곪지 않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처세술을 연마해야 하는가. 


KBS에서 제작한 오피스 모큐멘터리(허구의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다큐멘터리) <회사 가기 싫어>에서는 직장인들에게 ‘넵무새’가 되라고 말한다. 넵무새는 ‘넵’과 ‘앵무새’를 합친 말로 어떤 상황에서든 “넵”만 반복하는 직장인을 일컫는다. 따지고 대들고 싶은 부당한 상황에서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수긍의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으니 가장 수동적인 대처법이라도 할 수 있겠다. 

일러스트레이션 : 황하초 


베스트셀러 『신경끄기의 기술』에서는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를 외치며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신경을 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인생에는 원래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알게 되면 상사의 잔소리와 같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신경을 끄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상사의 잔소리에 하나하나 반응하기보다는 진정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써야 하기에 내면의 힘으로 외부의 공격을 이겨내는 ‘정신승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0년 간 직장생활을 한 어떤 지인은 “참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정리해서 상사에게 편지를 쓰라”고 조언했다. 잔소리를 들을 때는 화가 나고 속이 상해도 반발하지 않고, 감정이 어느 정도 배제된 논리적인 글을 통해 부당한 요구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꽤 그럴듯해보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 조언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상사의 잔소리에 찌푸린 얼굴로 반응하는 것은 분명 처세술의 부재에서 오는 ‘나의 손해’다. 상사가 어떤 말을 하든 반발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넵’을 반복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직장 내에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동의만 하는 부하 직원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상사는 그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의지하기보다는 더욱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십상이다. 


물론 상사의 말에 늘상 불만 섞인 표정과 말투로 대응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태도다. 하지만 부당한 잔소리에 찌푸린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권력과 위계의 틈 바구니에서 말단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종의 ‘꿈틀거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바른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 원하는 바를 확인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은 수없이 많은 순간, 하고 싶은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다. 좀 더 세련된 처세술을 연마할 때까지 나는 웃는 얼굴로 마음의 병을 키우기보다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까칠한 직장인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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