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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kyea Sep 16. 2020

계시키 산책 일기 | 형아?? 형아!!

남자 중에 형아가 제일 좋아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고 다행히도 다니던 회사에서는 반려동물 동반 출근이 가능하여 며칠을 곧잘 데리고 다녔다. 우리와 따로 사는 오빠는 시키를 직접 본 적이 없어 내가 다니는 회사로 초대하여 시키를 처음 만났다. 그런데 시키는 모든 여자 직원들한테는 애교도 많고 친절한데 유독 남자들의 손길은 무서워했다. 당시에는 시키도 남녀 구분을 할 줄 알아 여자 인간만 좋아하고 남자 인간은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녀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체로 여자는 고음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손길이 더 다정한 반면, 남자들은 간혹 거칠어서 강아지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형아를 만난 시키는 형아를 유독 무서워했다. 간식을 줘보지만 간식만 홀랑 먹고 도망갈 뿐이었다. 얼마나 싫어했는지 한 번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오빠한테 강아지 산책을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줄을 잡고 같이 나가다가 다녀와하면서 오빠한테 줄을 주는 순간 시키가 멈춰 버렸다. 마치 아빠를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데리고 나갔다 왔었는데, 오빠는 그 순간이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그래도 오빠랑 친해지는 게 중요할 거 같아 친밀감 형성과 신뢰를 쌓기 위해 주말이 되면 오빠가 사는 집 근처 남산으로 데려가 같이 산책을 했다. 물론 줄은 내가 잡았다. (형아가 줄잡는 순간 '얼음'이다.)그런데 아직 새끼인데 우리가 너무 긴 산책을 했는지 힘이 빠진 시키가 가다 말고 멈춰 섰다. 몇 번은 내가 안고 걸었지만 나도 체력이 바닥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오빠가 안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시키는 정말 정말 힘이 들었나 보다. 그냥 오빠 품에 안기더라. 너무 힘드니 누나고 형아고 다 중요치 않았나 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이후로 시키가 오빠한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거 같다. 형아가 줄을 잡아도 곧잘 걸어 다닌다. 이 사람이 자기를 헤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나 보다.


이후 오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꼭 와서 시키를 산책시킨다. 시키는 형아만 보면 환장한다. 형아가 오기 전에 '형아 온대!'하고 말하면 현관문 앞으로 뛰어가 형아를 기다린다. 그리고 형아가 도착하면 미친 듯이 달려들고 형아 어깨에 앞발을 대고 엄청나게 뽀뽀를 한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는 '형아 = 산책시켜주는 인간' 정도인 거 같다. 왜냐면 형아가 떠날 때면 본 척도 안 하고 껌 먹기 바쁘기 때문이다.


좌 : 산책은 힘들어 / 우 :  형아는 싫지만 힘드니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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