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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kyea Sep 16. 2020

계시키 산책 일기 | 계란이 먹고 싶다

소양증이 뭔데

시키는 입이 짧다. 잘 먹을 때는 또 잘 먹는 거 같지만 아무 때나 그렇다고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침 산책을 하기 전에는 그 어느 것에도 입을 대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코앞에 갖다두어도 본채 만 채다. 그런데 유일하게 시키가 먹는 게 계란이다. 계란은 정말 환장하고 좋아한다. 계란 깨는 소리만 들어도 흥분하는 걸 아니까 엄마는 계란을 깰 때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깬다. 근데 이 녀석은 정말 계란 감지기라도 있는 것인지 어느새 후다닥 엄마가 있는 주방으로 가서 '계란 한입만 주시오!'하고 쳐다본다. 일주일에 계란 1-2개 정도가 강아지한테 좋다고 하여 하나 둘 주기 시작한 게, 워낙 입이 짧아 밥을 잘 안 먹다 보니 매일 1개씩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키 뒷 허벅다리에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시키가 자주 입으로 긁어 처음에는 조금 간지러워서 긁나 보다 했는데 그게 어느샌가 털이 잔디가 깎여 나가듯 짧아져 분홍빛 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른 뒤쪽 허벅지, 앞다리 심지어 왼쪽 옆구리 부분도 털이 빠져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시키 행동을 관찰해보니 정말 어느샌가 몸을 긁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산책을 가다가도 몸을 긁기 위해서 멈출 정도였으니, 이건 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처음에는 시키가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알았다. 중대형 또는 대형견에 속하다 보니 분출해야 할 에너지가 많은데 하루 산책 2번으로는 해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몸을 긁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온몸의 털이 빠지기 시작하는 걸 보면 단순 스트레스 이상일 것 같았다.


엄마와 시간을 잡아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갔다. 몸에 털이 빠지고 심지어 검은색 딱지 같은 것도 듬성듬성 생긴다 라고 수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시키의 몸상태를 보며 바로 소양증이라고 말씀하셨다. (소양증은 일종의 가려움증으로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러면서 하루 음식 섭취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 바로 하루에 계란 한 개씩 먹인다고 하니 선생님이 계란이 문제라고 했다. 미디어에는 강아지에게 계란이 좋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계란을 끊는 김에 우선 사료와 껌을 제외한 모든 간식을 끊으라고 하셨다. 다행히도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문제는 아닌 거 같아 안도하며 나왔지만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계란인데, 영원히 계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될 시키가 너무 불쌍했다.


집에 오자마자 모든 간식을 다 넣어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사료, 덴탈 껌, 우유 껌이 시키가 먹을 수 있는 전부다. 이게 뭔 일인가 싶은 시키는 멍하니 간식 상자를 보더니 계란이 쌓여있는 계란판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갖다 댄다. '안돼, 못 먹어' 애처롭게 엄마를 쳐다봤자 엄마가 줄 수 있는 게 없다.


10여 일 정도 지난 지금, 다행히도 확실히 긁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확실히 계란이 문제였나 보다. 큰 개들은 작은 개들보다 튼튼해서 뭐든지 잘 먹고 잘 크겠지 했는데, 오산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 중 제일 예민하고 까다로운 놈이다. 그래도 아프지 말고 어서 낫자!


길가던 중 간지러워 긁는 시키, 다리가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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