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kyea Sep 15. 2020

계시키 산책 일기 | 아빠? 그게 뭐야?

아빠를 위해 왔지만 아빠는 싫다

시키는 여전히 우리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작년 가을쯤에 아빠가 이제 데려가도 되겠냐고 했을 때,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데 이 작은 것을 어떻게 창고에 놓고 살겠냐고 우겨서 겨울이 지나고 데려가라고 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 이제 날이 제법 선선하데도 여전히 아파트에 우리와 살고 있다.


웃긴 것은 아빠를 위해 데려온 시키인데 시키는 아빠를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강아지들은 으레 가족들이 집에 들어오면 미친 듯이 뛰어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기 마련인데 아빠가 오면 나가지도 않는다. 간혹 다른 사람인 줄 착각하고 현관으로 뛰어갔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힘차게 흔들리던 꼬리가 갑자기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아빠가 견과류를 먹을 때, 생선을 반찬으로 밥을 먹을 때면 아빠 옆에 꼭 붙어 손안에 들린 음식을 쳐다본다. 그게 시키가 유일하게 아빠한테 친한 척하는 시간이다. 주말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아빠와 시키가 단둘이 있을 때면 시키는 오빠 방 베란다고 가서 한껏 늘어져 잠만 잔다. 이때는 아빠가 아무리 간식으로 유혹해보려고 해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시키가 당연히 아빠와 산책을 나갈 리가 없다. 장난치려고 내가 산책 나가자! 하며 옷을 입히고 개 리쉬를 아빠 손에 쥐어주는 순간 시키는 망부석처럼 요지부동이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7-8개월 정도였을 때인 거 같은데, 어쩌다가 아빠가 시키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데 까지 성공했다. 그런데 얘가 집 앞 숲길에서 목줄 탈출에 성공을 해버렸다. 다급하게 아빠가 전화와 서는 네가 좀 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급히 숲길로 갔는데, 아빠는 벤치에 앉아 망연자실하게 목줄만 든 채 시키를 쳐다보고 있었고 시키는 유유자적 풀냄새를 맡고 있었다. '시키!!!'라고 크게 부르니 날 알아보는 시키가 급하게 달려왔다. 다시 목줄을 채우고 집으로 갔다. 아빠는 창고가 있는 곳에 개가 몇 마리 자유롭게 다니는데, 그 강아지들은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참 안쓰럽다. 아빠를 위해 온 시키가 아빠를 안 좋아하다니. 그러니 우리가 계속 시키를 창고로 못 보내고 계속 같이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저 가자미 뼈다귀가 먹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계시키 산책 일기 | Profil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