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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Lisa Oct 02. 2023

'나'를 찾아서

하와이 넷째 날,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카 마테 마테 카 오레, 테네이 테 탱고테가 타 푸후루후로....." 내가 죽던 네가 죽던 죽음을 불사하고 끝판을 내보겠다는 듯한 뉴질랜드 마오리 족의 전통 춤 하카(haka.)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뜬 눈, 표착한 먹이에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날름 인다. 위협하듯 몸을 낮추고 발을 구르며 팔을 폈다 감았다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흔든다.


근육과 지방이 리듬을 달리하며 흔들리는 얼굴이 표효하며 달릴 준비가 끝난 짐승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제국주의 시대 백인 식민제국들에 의해 언어와 문화가 말살되거나 간신히 명목만 유지하는 원주민의 그것 중 메이저 문화로 자리 잡은 하카는 매력적이다.


하와이 뉴질랜드 이스트섬을 연결하여 그 삼각형 안에 포함된 1000개 이상 섬들의 집단을 폴리네시아(Poly(많은) + -nesia(섬)라고 한다. 섬에서 섬으로 카누로 항해하면 2년이 걸리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폴리네시아인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언어, 문화, 종교를 공유하고 있다.


하와이 폴리네시안 문화센터(Polynesian Cultural Center: PPC) 에는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던 폴리네시안 후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하와이 내 대학으로 진학하여 잃어버린 문화를 배우고 전달한다. 운 좋게 이중언어가 완벽한 귀엽고 재미있는 한국인 여학생 K가 한국어가 편한 어른들과 영어가 편한 아이들로 구성된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의 투어 가이드를 자처한다.


K를 따라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사랑했던 사모아를 시작으로 빌리지를 탐험을 떠난다. 통가, 타이티, 아오테라오라, 피지, 하와이 각 부족이 선사하는 쇼를 구경하며 전통 게임 춤 만들기 등에 참여한다. 그 많은 액티비티 중 아이들은 나무를 비벼 불을 피워보겠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일어나지를 않는다.


간혹 피어오는 연기에 미련이 남아 한참을 비비고 또 비빈다. 결국 연기만 피우다 어린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아쉬워 일어난다. 남자애들은 왜 이런 것이 재미있을까. 이십 년 옆에서 봐왔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카누를 타고 이동하며 쨍한 파란 하늘과 눈부신 하얀 구름에 눈이 스르륵 감긴다.


물길을 따라와 육지에 도달하여 거석상을 만난다. 이스터 섬에서 옮겨온 거석상을. 선사시대부터 세워진 신비한 거대한 거석상들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조그만 이스터 섬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미술사 책에서 읽은 후 마음에 신비로움으로 남았다. 누워있는 커다란 거석상 하나와 기념사진 찍기 좋은 다섯 거석상이 쪼르륵 서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듯하다. 가이드 K와 함께 곱게 간 얼음에 밝은 무지개색 시럽을 뿌린 시원한 쉐이브 아이스를 먹으며 잠시 휴식한다. K는 이곳 대학에서 만난 '뿌리 찾기'에 열심인 친구들의 영향으로 자신도 뒤늦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루아우(하와이 전통의 음식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연회)에 앞서 마지막 부락 뉴질랜드로 향한다. 아직은 폴리네시아 성인의 원시성과 원숙함보다 슬림하고 건강한 젊음이 빛나는 학생들이 우리를 반긴다.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모계 혹은 부계 조상을 소개한다. 앞으로 전공공부와 더불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알리며 살아갈 삶을 긍정하며 확언한다.


사람들의 응원박수에 발을 구른다. 무대가 부서지도록 힘차게 구른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 팔을 크게 벌린다. 떨리는 가슴을 힘껏 두드리며 단호한 표정으로 투쟁적으로 비상하듯 춤을 춘다. 그들의 하카는 어딘지 어설프다. 혀를 내밀고 검게 그려 넣은 분장에도 그들의 앳된 얼굴이 아름답고 고귀하게 빛난다. 그들의 박력적인 날갯짓에 흩어지는 땀에 난 젖는다. 몸이 전율한다. 눈물이 난다.


난 이 십 대 미국에서 결혼을 하면서 내 성(姓)을 버리고 남편 성(姓)을 따랐다. 어쩌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여기 문화를 따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그때, 20대의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지우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피도 갈아버리고 싶을 만큼 내 부모를 혐오했다. 다 버리고 나의 과거 기억 존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게 성(姓)을 바꾸고 국적을 바꾸고... 바꾸고 또 바꿨다.


그리고 정말 나를 잃어버렸다. 고백하자면, 아이들의 국어 교육에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단절을 꿈꿨다. 선과 악으로 구분하듯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고 단절시키고 싶었다. 나의 아픈 과거인 내 부모로부터 그리고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막장 시부모로부터 나름대로의 보호 수단이었다. 난 여전히 아이들의 민족적인 정체성과 가문의 뿌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와이에서 출생과 사망 만남과 이별 축하와 위로 크고 작은 모든 인생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꽃 목걸이 레이가 아이들에게 귀찮을 법도 한데 빼지 않고 목에 잘 두르고 있다. 나중에 이 시간을 추억할 만큼 즐거운 걸까.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 저편에 엄마와의 좋은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어렸을 때 가족과 여행한 경험이 거의 없다. 가까운 공원에서 캠핑조차 못해봤다. 간혹 어디라도 가면, 줄 세워 사진 찍고 먹고 서둘러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남편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고 요란스럽게 여행 도시락을 싸는 것도 불만이다. 어디 먹으러 가냐고 한다. 놀러 가서 함께 얘기하고 웃고 떠들며 남기는 추억의 힘을 모른다. 장난 좋아하는 남동생과 눈만 마주치면 종알종알 거리는 내가 아이들은 신기한 듯하다. 그런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저녁을 위해 아침부터 땅을 파고 뜨거운 돌을 올려 익힌 커다란 돼지고기 칼루아 피그와 곁들여 먹을 타로 뿌리를 갈아 만든 포이와 라우라우 포케등 뷔페에 있는 하와이 전통 음식은 모두 먹어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접시들이 테이블에 펼쳐진다. 충분히 담아 왔는지 준비되었다는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아아들의 기쁨에 들썩이는 어깨, 베베 꼬인 몸, 테이블 아래로 털고 있는 다리들이 눈에 들어와 웃음이 난다. 맛있게 먹자!


지난날들은 지난날들이다. 하지만 그 지난날들이 만든 오늘이 있다.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그렇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가 그 오늘이다. 허해진 배속을 꼭꼭 채워본다. 목이 막혀오도록. 오렌지 빛 하늘이 어두워지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불쇼가 시작한다. 조금씩 다른 문화의 통가 하와이 뉴질랜드 타히티 피지 각 섬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 조각조각 이루어지는 스토리다.


삼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삶의 기쁨과 시련을 따듯하게 일렁이는 불빛에서 활동적인 온전한 불이 되기도 불과 불이 화합하기도 한다. 불들의 충돌로 열은 팽창하여 거대한 뜨거운 불덩이가 된다. 개인을 넘어 대지와 창공마처 활활 태워 삼킨다. 다 타고 남은 자리 어둠이 된다. 칠흑 같은 잿더미에서 새로운 생명의 울음소리와 함께 불이 살아난다. 화려한 불쇼는 끝이 나고 그 잔여 불이 내 아이들 눈에서 피어오른다. 초라하고 외로운 내 마음의 섬을 지탱해 주는 나의 빛나는 거상들이 반짝이며 나의 희망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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