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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에펠 탑

by 연희동 김작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에펠탑을 바라보며 보내고 싶었다. 오월이지만 아직 강바람이 차가울 걸 대비하여 두툼한 숄을 준비하고 택시를 탔다. 멀리 눈앞에 보이는 탑이 가까워 보여도 택시를 타고 달리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세느 강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강변 둑에 걸터앉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는 연인들, 주말 오후를 가족들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이미 강둑은 만원이다.


사이요 궁 광장 앞 잔디밭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기념품을 팔목에 걸고 다니는 잡상인들과, 나처럼 적당한 자리를 잡으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함께 붐비고 있어서 이곳은 마치 어린 시절 학교 운동회 날의 운동장 주변을 연상케 했다.


사이요 궁의 층계 아래에서는 살사댄스를 추는 그룹과 소년들의 비보잉 춤이 절정을 내닫고 있다. 취미로 함께 춤을 배우는 동아리의 주말 모임인 듯 하지만 춤추는 실력들이 대단하다


대리석 바닥 위에서 뛰고 구르고 꺾는 비보잉은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묘기에 가까웠다. 남녀가 짝을 맞춰 추는 살사댄스 역시 비록 평상복 차림새로 추는 춤이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배도록 열심히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에 구경꾼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댄스는 곧이어 펼쳐질 에펠탑의 휘황찬란한 무대를 위한 전야제쯤으로 보였다.


그동안 해는 서서히 세느 강의 물빛을 진홍 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스름이 세느강변에 장막을 드리우기 시작하자 지금껏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동작들을 멈추고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하였다.


볼록렌즈로 태양의 빛을 모아 불길을 만들어 내 듯이 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만으로도 에펠 탑은 불처럼 타 오를 것만 같다. 사람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외치기 시작했다.


쓰리… 투…. 원…. 제로!!


정확히 밤 아홉 시에 축복처럼 에펠탑에 불이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진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자기 팀이 골을 넣었을 때 지르는 함성과도 같다. 불빛의 움직임에 따라 똑같이 느끼는 감동의 표현, 이 순간만은 모두가 한 팀이 된 듯하다.


탑에 불이 켜 지는 순간에 맞춰 사람들은 와인을 터뜨리고 청춘 남녀들은 입맞춤을 한다. 내 곁에 앉아있던 얼굴이 거무스레한 남자는 에펠탑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에 맞춰서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무릎을 꿇고 꽃을 든 남자에게 주변에서는 모두 박수를 보내주었다. 여자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탑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본다면 에펠탑은 마치 어떤 종교 단체의 교주와도 같았다.


이처럼 사랑받는 에펠탑도 한때는 미운 오리 새끼였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에펠탑을 지독하게 싫어했던 ‘모파상’의 일화는 그중 가장 유명하다. 모파상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에펠탑을 피해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그 식당 안에서 만이 탑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쾌함을 견디려고 불쾌함 안으로 들어간 참 아이러니한 방법이다


파리에 오기 전 우리가 머무를 숙소를 구하려고 했을 때 마음에 드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창 문 밖으로 에펠탑이 보이는 사진 하나만 보고 선뜻 계약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계약한 방은 사정이 생겨 대여하지 못하니 구조가 똑같은 다른 방을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모든 조건이 전과 같으면 괜찮다고 했다. 호스트는 창 밖으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것만 다를 뿐 다른 것은 모두 똑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두 말없이 계약을 취소하고 시내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이곳에 와서 보니 에펠탑은 그 주변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파리에 있는 일주일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에펠탑을 볼 수 있었다. 에펠탑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눈에 뜨였다. 파리에 도착한 첫 날밤에 갔던 개선문에서 에펠탑이 보였다. 멀리서 반짝거리는 탑을 보았을 때, 내 마음도 약간 들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탑이 귀여웠고 예뻤다.

그다음 날 생 나자르 역에서 외곽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탔을 때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에펠탑과 마주쳤다. 낮에 보는 탑은 밤에 보는 것과 달리 무척 웅장 해 보였다. 그리고 참으로 유연해 보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인 오늘은 부러 에펠탑을 보러 사이요 궁 앞으로 갔다. 아홉 시에 불을 밝힌다는 말을 듣고 시간에 맞춰서 나갔다.

주변이 어두워 지자 에펠탑에 불이 밝혀졌다. 그리곤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불빛들이 반짝거리며 에펠탑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로 탈바꿈했다.


에펠탑은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랐다. 오늘처럼 주말에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바라본 에펠탑은 단단한 꽃받침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펠탑이 있는 한 파리는 시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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