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에 가득 빵을 담았다. 호텔을 예약할 때 아침 식사를 주문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이다가 프랑스는 빵의 나라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침식사를 이곳 호텔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파리 8 구역의 개선문 근처에 있는 아담한 5층 건물이었다. 파리의 대부분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호텔도 중세의 건물처럼 외양은 퇴색해 보였으나 내부는 그런 데로 깔끔하였다. 하지만 옆방에서 나누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릴 만큼 방음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다지 좋은 호텔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호텔 레스토랑은 로비를 지나 계단 두 개를 내려가는 지하에 있었고 생각만큼 넓지는 않았다.
첫날 시차로 인해 뜬 눈으로 있다가 레스토랑의 첫 손님이 되었다.
봉쥬르… 하얀 에이프런을 입고 있는 중년의 부인이 주방장 겸 웨이트리스인 듯 손에 쟁반을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치자 건성으로 인사한다. 한편에 마련된 식탁 위에 하얀 냅킨과 그 위에 빈 컵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우린 그중에서도 조금 널찍한 곳에 자리를 골라 앉았다.
레스토랑의 중앙에는 기다란 탁자 위에 아침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크루아상과 깜빠뉴 마들렌 등 낯익은 빵 들이 수북이 담겨 있는 쟁반 곁에 오븐에 구워 먹을 수 있게 잘라 놓은 식빵이 있다. 커피와 우유 오렌지 주스 등 마실 것과 다양한 종류의 잼과 치즈, 버터와 햄, 소시지 그리고 작고 단단한 서양배와 사과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다. 이 밖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샐러드나 오믈렛 같이 요리로 만들어 놓은 음식은 없었다. 전통적인 프랑스식 아침 식단이었다.
빵과 커피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오다가 내려오는 다른 손님과 맞닥뜨렸다. 그 손님은 우리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중년 부부와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있는 한 가족이었다. 가족 모두 소박한 외모로 프랑스 어느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같았다. 곧이어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비어 있던 레스토랑의 좌석이 꽉 찼다, 손님들이 찬 뒤 에야 식당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의 아침 풍경이 이곳에 있는 일주일간 꾸준히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처음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서 빵을 먹었고 내 옆 자리에는 프랑스인 가족이 항상 그 자리에서 빵을 먹었다. 아침마다 똑같은 자리에서 빵을 먹으며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미소만 지을 뿐,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프랑스어로 말을 하니까 프랑스 사람인 줄 알았고 세련된 도시인의 모습이 아니어서 지방에서 올라온 가족이라고 생각하였다. 크루아상을 먹는 아들에게 흘리지 말고 먹으라고 주의를 주는 모습이나 조개 모양의 마들렌을 커피에 묻혀 먹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다.
셋째 날은 아시아에서 온 젊은 여인이 우리 옆자리에서 빵을 먹었다. 처음에 한국에서 온 여행객인 줄 알고 내가 먼저 밝게 인사를 했다. 한국인을 닮은 그녀는 대만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는 그는 대만에 있는 자기 집은 알아주는 게스트 하우스라며 주소까지 알려 주며 다음에 꼭 들려달라는 영업 홍보까지 할 정도로 활달하였다. 우린 겁나게 친한 척 떠들어 댔다. 그녀는 왕수다쟁이였다. 그녀의 수다만 들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대만에서 온 여행객은 이틀 만에 이곳을 떠났다.
다섯째 날도 그다음 날도 그 가족은 우리 곁에서 똑같이 빵을 먹었다. 일주일 동안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우린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쪽에서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매일 아침 빵을 먹으며 오늘도 떠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할 뿐. 왠지 곁에 있으면 든든할 뿐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주방장인 부인에게 그동안 맛있는 빵을 잘 먹고 간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가족이 우리를 바라본다. 무언가 눈치챈 듯 약간 놀라는 눈빛이다. 나는 손을 들어 떠난다는 표현을 했다. 하지만 떠난다는 표현은 완벽하지 못했다. 쑥스럽게도 손을 가슴쯤에 올렸다가 이내 머리로 가서 흘러내리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기 때문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주춤하며 손을 살짝 들었다가 놓았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파리에서 남 프랑스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가족의 모습이 줄곧 생각났다.
만남은 소중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우정을 쌓는 만남도 좋지만 이렇듯 아무것도 모르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만남도 있다. 길을 가다가 선한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가 살짝 몸을 스쳐만 주어도 좋은 것처럼,
그 가족은 아마 내일 아침에도 오늘처럼 그 자리에서 빵을 먹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옆자리에 앉았던 동양인 부부에 대하여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먼저 이곳을 떠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떠났더라면 비어 있는 옆자리를 보며 빵 맛이 왠지 심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