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작지만 달콤한 과일과 크고 다양한 맛의 과일이 있다면 어떤 것부터 먹을까? 나는 작고 달콤한 과일부터 먼저 골랐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작고 달콤한 과일과도 같다.
어제 센 강에서 바토 뮤슈를 타고 야경을 즐기면서 오랑주리 미술관과 오르세 박물관의 위치를 눈짐작으로 알아 두었다. 두 건물은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어서 위치상으로 오늘 하루 두 곳의 작품을 모두 감상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아침 햇살이 비치는 호숫가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막 피어 오른 수련을 바라보고 있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수련의 노란 꽃잎, 그 사이에 돋아난 작은 물풀과 호수 위의 잔잔한 물살, 물살에 어린 버드나무의 흔들림까지..., 오랑주리 미술관 1층 전시실은 모네의 호수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모네의 작품 중에서도 거작으로 손꼽히는 수련은 총 여덟 점의 작품이 연작으로 미술관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그 방에 들어서자 마치 내가 지베르니의 호숫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모네가 살았던 집이 있는 지베르니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이 곳에서도 충분히 그곳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만 같다.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채광은 수련이 있는 호수 위에서 부서져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연출해 준다. 지금은 따뜻한 봄날 아침 호수의 모습이다.
초기 인상파 화가인 모네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아침햇살이 비치는 버드나무 아래 수련과 저녁 무렵 호수 위의 수련은 같은 장소를 그렸지만 다른 그림처럼 보인다. 아침의 수련이 청명하다면 저녁 무렵의 수련은 하루 종일 수고한 햇빛의 나른함이 엿보인다. 나는 호숫가를 산책하듯 그림 앞을 거닐며 햇빛에 의해 변화하는 수련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오래전에 유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수채화와 달리 물감을 테라핀에 섞어 색을 표현하는 유화는 덧 칠을 할수록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곤 하였다. 유화를 처음 그리는 사람은 이미 그려진 그림을 보고 모사를 하는 수업을 받는다. 그때 수련을 본 따서 그려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련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은 가까이에서 보면 덧칠한 붓 자국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바라보면 호수 위에 이는 잔잔한 물결까지 볼 수 있었다. 진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화폭 위에서 붓을 휘두르는 화가의 에너지까지도 느낄 수 있기에 아무리 오래된 그림이라 하여도 그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곳의 미술관은 모든 그림을 자유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진을 찍어도 되고 가까이 다가가서 감상을 해도 누구 하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편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바닥에 주저앉아서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아예 자신의 화구를 들고 와서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림들을 눈에 담기에 벅차서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는 순간 그 그림은 내가 지금껏 매체에서 만났던 사진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내가 찍은 것 보다도 더 선명하게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그림을 사진으로 찍는 건 무의미했다.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르노와르의 분홍빛 살결을 지닌 소녀들과 모딜리아니의 길쭉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천천히 걸었다.
그림을 모사하는 화가
전시실에서 미술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
오르세 박물관
파리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오르세 박물관은 오늘이 처음이다. 15년 전 딸아이와 배낭여행을 왔을 때 오르세 박물관에 왔지만 마침 그 날이 정기 휴일이어서 박물관 입구에서 돌아 서야만 했다. 아직도 그 날의 아쉬움이 생생하기만 하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오르세 박물관을 찾아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튈르리 공원의 잘 다듬어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산책하듯 천천히 센강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곧게 자란 나무들과 푸른 잔디밭, 하얀 의자가 있는 강변의 모습은 방금 내가 감상한 그림 속 풍경과 닮았다
다리 난간에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린 생고르 다리는 오랑주리 미술관과 오르세 박물관을 이어 주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이 다리는 사람들만 지나다닐 수 있는 인도교이기도 하다. 파리의 다른 다리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친근한 데다 다리 난간에는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는 글들을 적어 놓아서 왠지 무척 낭만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센 강의 풍경이 화폭에 옮겨지고 있다. 밝고 부드러운 그림이다.
생고르 다리 끝에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오르세 박물관이 보인다. 이미 관광객들의 줄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통합권을 끊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 곳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대로 그림을 감상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면서 비로소 천천히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었던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오르세 박물관은 원래 기차역이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높은 천장 위로 보이는 하늘이 기차역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철로가 놓여 있던 중앙역 자리에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은 조각품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관람객들이 어울려 있어서 어느 게 조각이고 어느 게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만큼 조각품이 정교하다는 뜻이다. 아마 남편도 지금 저기 어디쯤 에서 조각처럼 앉아 쉬고 있을 것이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만종’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 아를’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등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모두 이 곳에 있다. 사실 처음엔 욕심을 부려서 많이 보려고 빨리빨리 지나쳤다. 그런데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한 그림만 응시하고 있는 젊은 청년을 보았다. 그 때야 내가 그림을 소나기를 피하듯이 감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부터 내가 보고 싶은 작품들을 골라서 천천히 음미하기로 했다. 서둘지 않고 여유롭게 바라보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붓터치에서 작가의 힘을 느끼고 피사체의 색감에서 슬픔과 기쁨을 느낀다. 천천히 오래오래 바라보는 나에게 그림은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공부보다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다. 장난으로 그린 만화를 친구들이 좋아하고 미술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뒤부터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다. 하지만 미술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은 입 밖에 내어 보지도 못한 채 꿈과는 다른 진로를 택했다. 결혼하여 사는 동안 꿈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난 뒤, 뒤늦게 문화센터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에 빠지게 되었다. 유화와 수채화 여행 드로잉 등, 그림의 종류에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 그동안 그려 놓은 작품들을 모아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곳에 그림이 전시된 19세기 근대 작가들은 대부분 빈곤한 삶을 살았다. 고흐나 고갱, 르느와르 등, 그들은 예술을 창작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환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이 시대에 풍요한 가치를 유산으로 남겨 두었다, 내가 가난과 타협하지 않고 저들처럼 용감했더라면 지금 글을 쓰는 일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고 언제라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만약에 내가 파리를 다시 오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오르세 박물관 때문이다.
박물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흥분하여 가슴이 뛰다가 지금은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늘 하루 이 곳에서 장문의 대하소설을 읽어 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