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의 말에 차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워 오른쪽 창가를 바라본다.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던 몇 명은 아예 일어서서 옆 좌석으로다가가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벌판 끝에 보이는 몽생미셀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우리가 버스가 아닌 배를 탔더라면 아마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졌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실체를 빨리 만나고 싶은 다급한 마음들이 모두 한결같다.
버스는 바다를 막아서 만든 제방 위에 여행자들을 내려놓았다. 이 제방 때문에 지금은 몽생미셸을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육지가 되기도 하고 섬이 되기도 하는 몽셀미셀은 지금은 저만큼 물러 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앙상한 바위섬에 우뚝 서있는 성으로 올라가는 동안 주변에는 바람 소리와 물새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8~9세기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80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건물 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웅장해 보이는 성이다. 수도사들이 직접 먼 육지에서 돌을 짊어지고 와서 지은 중세의 수도원은 곳곳에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자취가 남아 있었다. 성벽에 깔린 커다란 돌덩이마다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돌을 날라 온 수도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힘들고 외로웠을 수도사들의 심정이 그대로 돌로 굳어진 듯하다.
수도원 건물 여기저기에서 기다랗게 끌리는 까만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게 이런 것일까? 수도사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와 바람소리, 첨탑 위의 종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밀물 때가 되면 물속에 담겨있다가 썰물이 되면 바다 들판에 우뚝 서 있는 그림 같은 성, 고독과 외로움,그리움같은 무채색의 단어 앞에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은 성. 아름다운 고독과, 아름다운 외로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역설적인 정경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나는 신비의 성이다.
몽생미셸 전경
이렇게 센티멘탈 한 곳이 나폴레옹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고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는 요새로도 사용되었다.
불가항력적인 시대의 굴욕을 겪고도 아직 성스러움이 남이있는 건 뭘까, 멀리서 맨발의 순례자들이 찿아오고 있었다.
몽생미셀 성당의 기둥에는 성 미카엘이 죄의 무게를 달아볼 수 있는 저울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순례자들은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여 그 고통만큼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먼지투성이가 된 순례자의 맨발을 보면서 그들의 깊은 신앙심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