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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와인 그리고 몽생미셸

by 연희동 김작가



저 멀리 바다 위에 아스라히 작은 섬이 보인다.

“저곳이 몽생미셀입니다”.

가이드의 말에 차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워 오른쪽 창가를 바라본다.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던 몇 명은 아예 일어서서 옆 좌석으로 다가가 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벌판 끝에 보이는 몽생미셀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우리가 버스가 아닌 배를 탔더라면 아마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졌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실체를 빨리 만나고 싶은 다급한 마음들이 모두 한결같다.


버스는 바다를 막아서 만든 제방 위에 여행자들을 내려놓았다. 이 제방 때문에 지금은 몽생미셸을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육지가 되기도 하고 섬이 되기도 하는 몽셀미셀은 지금은 저만큼 물러 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앙상한 바위섬에 우뚝 서있는 성으로 올라가는 동안 주변에는 바람 소리와 물새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8~9세기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80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건물 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웅장해 보이는 성이다. 수도사들이 직접 먼 육지에서 돌을 짊어지고 와서 지은 중세의 수도원은 곳곳에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자취가 남아 있었다. 성벽에 깔린 커다란 돌덩이마다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돌을 날라 온 수도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힘들고 외로웠을 수도사들의 심정이 그대로 돌로 굳어진 듯하다.

수도원 건물 여기저기에서 기다랗게 끌리는 까만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게 이런 것일까? 수도사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와 바람소리, 첨탑 위의 종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밀물 때가 되면 물속에 담겨있다가 썰물이 되면 바다 들판에 우뚝 서 있는 그림 같은 성, 고독과 외로움,그리움같은 무채색의 단어 앞에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은 성. 아름다운 고독과, 아름다운 외로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역설적인 정경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나는 신비의 성이다.


몽생미셸 전경

이렇게 센티멘탈 한 곳이 나폴레옹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고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는 요새로도 사용되었다.

불가항력적인 시대의 굴욕을 겪고도 아직 성스러움이 남이있는 건 뭘까, 멀리서 맨발의 순례자들이 찿아오고 있었다.


몽생미셀 성당의 기둥에는 성 미카엘이 죄의 무게를 달아볼 수 있는 저울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순례자들은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여 그 고통만큼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먼지투성이가 된 순례자의 맨발을 보면서 그들의 깊은 신앙심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월의 기나긴 해가 노르망디의 바다속으로 사라지면서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몽생미셀의 무채색 기둥들이 세월의 흔적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날마다 타오르는 노을에 그을은 자국이었구나,

노을속의 몽생미셀은 신비할만큼 아름다웠다.


노을을 뒤로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몽생미셸은 한 무더기 별이 되어 있었다. 노르망디의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지만 그 어떤 것도 이들의 만남을 방해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살았구나…, 천 년이 넘는 동안 너를 외롭지 않게 만든 건 저 밤하늘의 별이었구나….

밤의 몽생미셀은 하늘과 하나 되어 별무리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루사이에 외로움과 부드러움,찬란한 모습을 모두 보여 준 신비한 성, 이보다 매혹적인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몽생미셀은 헤어질 때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행 중에 누군가 와인을 준비했다. 잔 가득 와인을 따라 준다. 와인잔 안에서 별들이 출렁거린다. 몽생미셸의 고요한 축제에 초대된 우리는 잔을 높이 들고 소리 높여 외쳤다.


" 몽생미셸 그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위하여!"








천국의 정원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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