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로 가는 길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던 호텔 지배인 알렉스 와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직업상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다반사로 겪는 사람인 데도 서운함이 진심으로 묻어나는 표정이다. 우린 서로 볼을 맞대는 비쥬는 아니었지만 가벼운 포옹으로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파리 리옹 역에서 남 프랑스의 도시 니스까지는 TGV로 5시간 40분이 걸린다. 꽤 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아마 역마다 쉬는 밤 기차를 탔을지도 모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로운 도시에서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딸아이와의 배낭여행은 주로 밤기차를 타고 다니는 알뜰 여행이었다. 때론 새로운 도시에서 아침을 맞을 때도 있었다. 우리가 탄 이등석은 의자를 뒤로 밀면 기다란 침대가 되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네 명의 승객이 눕게 되면 우린 좁은 한 개의 침대에 서로 다리를 맞부딪히며 네 명이서 자는 셈이 된다. 앞사람이 여자 승객일 때는 좀 나았으나 덩치가 큰 남자일 경우 나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딸아이의 발끝만 지켰다.
그렇게 도착한 새로운 도시의 아침은 마법처럼 고단한 내 몸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한 여름에도 새벽의 싸한 기온을 느끼며 기차에서 내리면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새롭게 여행을 떠나는 이방인이 되어 낯선 길을 찾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추억이 된 딸아이와의 배낭여행이 남 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새록새록 생각난다.
기차가 내륙지방을 지나면서 프로방스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덕 위의 고성과 붉은 지붕을 얹은 나지막한 집들, 싸이프러스 나무의 행렬, 끝이 보이지 않게 줄지어 선 포도밭과 장원, 양귀비 꽃이 핀 들판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내가 상상하고 소망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오월의 프로방스 풍경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마시다가 남겨 둔 로제 와인과 크로와상, 납작 복숭아가 우리 점심 메뉴다.
‘멋’이라는 라는 말은 예쁘다, 아름답다, 와는 차원이 다른 단어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왠지 품위가 느껴질 때 멋스럽다는 말을 한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기차 안에서 먹는 소박한 점심과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나는 지금 의도하지 않은 멋진 여행을 하고 있다.
마르세유 역에서 잠시 정차를 한 뒤 기차는 니스를 향해 달린다. 지금부터는 푸른 지중해를 옆에 끼고 가면서 조금 전의 풍경과는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해변의 모래사장과, 절벽 위의 집들, 나란히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은 이 곳 코스티쥐르 해변이 유럽 최고의 휴양지 임을 알려 주고 있다..
지금 내가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는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해안을 통틀어 코스타쥐르라고 한다. ‘하늘빛 해안'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눈으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빛은 하늘빛을 닮는다는 말이 맞다.
파리에서 프로방스로 오는 교통편으로 기차여행을 추천한 것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아들이었다. 자신은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남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온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푸른 바다를 끼고 달리면서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을 볼 때 생각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늘 이 기차 안에서 유난히 서울에 있는 두 아이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