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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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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30. 2019

늙은 개의 노래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했다.

                                               

                                                             

                        숲의 노래


따뜻한  혀가 내 몸을 핥는다. 부드럽고 꿈길같이 아련하여 나는 눈을 감는다. 미끈한 액체가 닦여져  나가고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털들이 부스스 일어났다.


엄마는 철이 없었다. 그냥 사랑 하나로 조건 없는 만남을 가졌다. 작은 울안이 세상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자신을  얽매고 있던 줄을  끊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자신이 더 이상 공주가 아니란 걸 알았다고 한다.


''그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멀리멀리 떠났을 거야, ''


숲은 아름다웠다. 축축한 이끼냄새, 싱그런 풀향기,  아침이슬이 사라지기 전의  상쾌한 숲의  공기, 고목의 가지 위를  뒹굴어가듯  달리는 작은 짐승,  이름모를 풀꽃들... 엄마는 아름다운 숲마당에서 뒹글고 달리며 '자유'라는 걸 처음 느꼈다.


가끔씩  넓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었다. 그곳에는 온갖 치장을 한 공주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모두들 예쁜 옷을 입고 도도하게 걸었다. 그들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엄마를  발가벗었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옷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었다. 엄마의 주인 할머니는 백화점 갈 때 입는 옷과 시장을 갈 때 입는 옷이 달랐다. 남에게 함부로 보이기 싫어서 옷을 갖춰 입는다고 했다.


언젠가 엄마도 옷을 입은 적이 있었다. 엄마가 사는 아파트는 겨울에도 따뜻했다. 하지만 베란다는 달랐다.

이 집에 아이가 생긴 뒤부터 주인 할머니의 관심은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아이가 태어난  그날부터 엄마의 거처는 할머니의 침대 머리맡이 아닌 차가운 대리석이 깔린  베란다로 옮겨졌다.


엄마는 그날이 가장 슬펐던 날로 기억했다.

무관심..., 미움보다 더 잔인한 것,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행복은 더 이상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상대적 빈곤감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온 몸을 찔러댔다. 추웠다.

엄마는 소리 내어 울었다.


주인 할머니가 다가와서 옷을 입혀 주었다. 작아서 못 입게 된 샤쓰를 잘라 만든 것이다. 그런대로 훈훈했다. 그 보다는 자신을 사랑했던  주인 할머니의 살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이제 요구하는 법을 알았다. 처량하게 소리 내어 울면 주인 할머니가 다가와 주었다. 가끔 쓰다듬어 주고 "그럼 못써"라고 타일렀다.

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었다. 유리문을 긁으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


며칠 후, 엄마는 승용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떠났다. 그날 아침. 주인 할머니가 준 푸짐한 음식이 마지막 만찬이었다는 걸 모른 채  감사하게 먹었다.

엄마는 슬픔보다 두려움이 컸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주인 할머니가 그럴 리가 없다고, 언젠가처럼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찾아와 줄 것이라고  믿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새 주인이 엄마를 맞는다. 흙을 밟을 일이 전혀  없었던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넓은  주택이었다.

"예쁘기는 한데 털이 길구나"

"밖에서 키우려면 집이 있어야겠군''

그림    이자하

집이라고? 엄마는 생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엄마의 집이었다. 베란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게 먼 곳에 사람들이 보였었다.


"여기가 이제 네 집이다"

주인 할머니는 품 안에서 엄마를 내려놓으며 넓은 거실을 가리켰다.

엄마 집이 할머니 집이었고 할머니 집이 엄마 집이었다. 엄마는

 집안에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산책을 마치면 주인 할머니는 항상

"이제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라고 했다.

엄마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우리"라는 말이 참 좋았다고 했다.

우리 집..., 우리 강아지..., 우리 산책할까?

왠지 그 말을 들으면 주인 할머니에게 뭐든 해드리고 싶었고  충성심이 저 가슴속에서부터 솟구친다고도 했다..


뜰이 넓은 마당 한편에 엄마의 집이 생겼다. 혼자서 누우면 딱 알맞은 집안에는 푹신한 이불도 깔려있었다. 하지만  좋아하기는 일렀다. 주인은 엄마에게 기다란  목줄을 매달아 주었다.

줄의 길이만큼 동그라미가 생겼다. 아무리  뜰이 넓어도 엄마의 영역은 그뿐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하룻 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았다.


구속은 자유를  꿈꾸게 한다. 목줄이 옥죄어 갈수록  주인 할머니의 집이 그리웠다.

소리 없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자신을  붙들어 메고 있는  목줄을 이빨로 자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나일론 줄은 쉽게 잘라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엄마는 아직도 주인 할머니의 냄새를 기억한다. 자신이 왔던 길을 찾아 마구 달렸다. 온 신경은 후각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숲을 만났다.


숲,

초록의 물결이  일렁이는 곳, 향기로운 풀들이 제멋대로  자란 그곳에서  덤불을 딛고 늠름하게 서  있는 나의 아버지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윤기 나는 짧은 갈색 털과 매서운 눈, 근육으로 다져진  쭉 곧은 다리, 유연한 허리, 야생의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엄마는 주인 할머니의 냄새를 잊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들개였다.

그림   이자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온다. 아버지와 함께 숲에서 뛰어다니던 동안에는 배고픔도  느끼지 못할만큼 행복했다.  풀밭에서 나 뒹글고  놀다 보면 엄마의  곱슬 머리털에는  풀 씨앗들이 가득 뒤엉켰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나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면 엄마의 눈빛은 언제나 그윽했다. 숲에서 엄마는 가장 행복했었다.


먹이를  구하러 나간 아버지를 마중 나온 그때,

산속을 누비며 엄마를 찾아다니던 주인의 손에 이끌려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엄마는 숲 속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몇 번의 탈출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엄마를 옭메고 있는 목줄은 더욱 두꺼워질 뿐이었다.


엄마가 숲을 단념한 것은 나를 임신한 걸 알고 난 후부터였다. 어느 날부터  배 안에서 새끼가 움직이는 걸 느낀 엄마는 더 이상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별의 노래



엄마의 혀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건 이 세상에  없다. 엄마가 낳은 새끼들  중에 유독 나를 더 사랑한 것은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다른 동생들과 달리 나는 아버지와 같은 남자였다.  나의 몸은 엄마의  하얀 털 색깔을 닮았지만 두 귀만은 아버지의 털빛을 닮았다. 엄마는 나의 귀를 자주 핥아 주었다.


넓은 마당에서 동생들과 뒤엉켜 뛰어놀다가  배가 고프면  엄마의 품으로 달려갔다.

우리에게 젖을 물리며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처럼 그윽했다.


여동생들이 하나씩 집을 떠났다. 그럴 때마다 엄 마는 나를 자꾸  핥아 주었다. 엄마를  닮아 하얀 털이 복실 한 예쁜 여동생들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선지 엄마도 떠나는 동생들을 붙잡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젖이 다 마를 때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다. 곱슬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털과 달리 내 몸에는 곧고 하얀 털이 자랐다. 내 귀는 엄마를 닮아서 아래로 늘어뜨린 작은 귀였지만 귀를 덮고 있는 갈색의 털빛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를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를 알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함께 먹고  함께  뛰어놀았다.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낳은 뒤부터 목줄이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자식들에게 끔찍한 엄마의 모성을  주인은  믿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있었던 숲 속의 날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엄마와 함께 지낸 날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사랑은 행복이라는 외투를 입고 온다.


엄마는 내가 아빠처럼 용감하게 굴레를 벗어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주인의 손에 이끌려 내가 떠나던 날.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하아~이놈 참 영리하구먼''

사람들은  나의 슬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인이 나를 덥석 않았다. 그때까지  우두

커니 바라만 보던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주인은 나를 버리고 엄마를 안았다.

그리고는 떠나는 나를 볼 수 없도록  엄마를 집안 어디인가로 데리고 갔다.


자동차 엔진 소리에 묻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사랑의 노래



나는 이제 늙었다. 내 힘으로 일어설 수가 없고 시야는 뿌옇다. 괄약근을 조절할 힘이 없어 자꾸만 부끄러운 짓을 한다.


치매  초기 판정이 나왔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내 가족의  얼굴을 기억한다. 내 이름도 또렷이 기억한다.

세찌...,

나는 처음부터 우리 집 가족의 일원이었다. 나의 이름은 세찌다. 내 위에 형과 누나가 있다.

첫째,..., 둘째..., 그리고 나 세찌...,


누나는 털 달린 동물을 무서워한다.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비둘기를 가장 무서워했다. 누나는 나와는 상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는 나를 입양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한다'

누나에게 나는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형은 달랐다.


대학생인 형은 나를 친동생처럼 대했다. 밖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았다. 맛있는 간식은 물론 내 놀잇감을 사 주기도 했다.

형과 나는 역동적인 놀이를 많이 했다. 멀리 던지는 공을 찾아오는 게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간식을 내 키보다 높이 올려놓고 뛰어서 먹게 하는 놀이를 한 덕분에 나의 높이 뛰기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형은 내가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하여 알려주기도 하였다.

두 다리를 땅에 딛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는 것은 '' 주세요''라는 표현이고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총소리를 내면 쓰러지는 연기도 가르쳤는데 나는 곧잘 따라 하였다.


식구들  앞에서  나는 재롱둥이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누나가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새로  한 아이가 들어올 때까지...,

그림     이자하


털이 복슬복슬하고 하얀 아이는 눈사람을 닮았다. 나의 어머니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동안 내가 외로워할 것을 염려했다.

이 아이는 무척 명랑하고 쾌활했다. 작은 솜뭉치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아이를 나는 기꺼이 동생으로 맞아들였다. 나의 어머니는 세찌인 나의 이름을 따서  그 아이의 이름을 또찌라고 지어 주셨다.


또찌는 비숑프리제 가문의 자손이다. 믹스견인 나하고는 근본이 달랐다. 그의 조상들은 프랑스의 귀부인들이 안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봐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나는 가족들의 사랑이 멀어질까봐 두려웠다. 나의 이런 걱정과 달리 우리 가족은 무척 합리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또찌는 누나의 사랑을, 나는 형의 사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생긴 후로 나는 더욱 의젓해졌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이런  태도를 칭찬하며 뭐든 서열을 지켰다.

밥도 내가 먼저 먹게 하고 가족들끼리 함께 앉는 소파에  또찌보다 높은 곳에  내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가족들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것은 이제 또찌의 몫이 되었다. 또찌를  향한 우리가족의 웃음소리는 싫었지만  대신  가족들이 외출을 하고  난 뒤  텅 빈 집에서 혼자서 기다리는 지루함은 사라져서  좋았다

나는 동생과 사이좋게 지냈다.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내가 행복한 것은 우리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치매에 걸린 걸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 같다. 밤이 되면 나는 무척 슬프게 운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다. 딱 한번  형이 군대에 가는 날. 형의 빈방을 보고 슬픔이 복받쳐 올랐었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굳어버린 사지를 매일 주물러 주신다. 나의 어머니가  맨손으로 나를  주물러 주실 때 나는 지금껏 잊고 살았던 엄마의 부드러운 혀의 촉감을 기억했다.


나는 이제  열일곱 살, 늙은 개가 되었다. 그리고 아프다.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롭다.

얼마 전부터  나는 신경안정제를 먹는다. 노란 물약을 삼키면  나의 몸은 나른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꿈속에서 나는 숲으로 갔다. 그 곳에서는  나의 아버지와 엄마가  뛰어놀고 있었다.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그림     이자하



♡ 세찌는  얼마전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 그림은 초등학교  2학년인 나의 외손녀  이자하가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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