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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15. 2020

부부싸움 그 후


어젯밤 잠들기 전 문자가 울렸다. 한 밤중에 세입자에게 걸려오는 문자나 전화는 대부분 걱정거리인 게 많다. 당연히 반갑지 않은 소식이겠지.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아주머니 창문으로 진드기가 들어왔나 봐요

진드기? 나뭇잎에나 붙어있어야 할 벌레가 왜 집안에...,

사진 좀 찍어서 보내 줄래요?

지금은 없어요 내가 약을 뿌렸어요 다음에 나타나면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나는 그래서 좀 털털한 남자 세입자가 다. 깔끔한 여학생은 자주 전화를 다. 아줌마  와이파이가 안 잡혀요 아줌마 길고양이가 자꾸 울어요  날더러 어쩌라고 제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컴플레인만 해 달라고요...,


엊저녁에 온 문자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아무래도 원룸 창문 아래에 있는 꽃밭에 약을 좀 쳐야겠다고 했다.

여학생들은 가끔 벌레를 보면 무서워 하지만 우리 집 원룸에 살고 있는 학생은 유난히 벌레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차라리 내가 약을 칠 걸...,

꽃밭은 장미 울타리를 넘어가야 한다. 집 창문과 담장 사이의 작은 화단으로 들어가서 약을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화단에는 어린 새싹들이 여기저기 돋아나고 있다.

새싹을 밟지 말고 울타리에 갓 돋아난 장미순을 조심하라는 내 부탁에 남편은 몹시 언짢아했다. 주문 사항이 너무 다는 것이다.

장미순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신경이 거슬리는 말투로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가시 돋친 말들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되돌아온다.


어떤 싸움이나 원인이 있다. 실은 며칠 전부터 나는 남편에게 서운한  있었다.

둘이서 함께 산책을 하고 산길을 내려오던 중에 자갈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픈 것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저쪽에서 걸어오던 두 여인이 놀라서 달려오다가 멈칫하고 그냥 지나친다. 사회적 거리 운운하는 판에 남을 도와주기도 도움을 받기도 꺼려진 내가 괜찮다고 한사코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저 앞에서 혼자 걸어가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내가 넘어진 줄도 모른 채 남편은 앞서서 마냥 걸어가고 있었다.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듣고 있으니 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릴 까닭이 없다.


항상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 때문에 산책하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단절되곤 하였다. 함께 걷다가 짝꿍이 넘어져도 모르는 산책을 더 이상 함께 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산책을 나가자고 하는 남편의 말을 거절했다. 

오늘 아침 우리의 부부싸움은 사실 며칠 전부터 작은 불씨가 몽실몽실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코로나 19 확진자도 문제지만 부부가 함께 한 집에 오래 있으면서 불화로 인해 파경을 맞는 가정이 많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가정불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재택근무를 하는 부부들이 가사와 육아, 회사일을 한 공간에서 처리하다 보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실컷 놀다가 헤어질 때쯤 싸우는 아이들처럼 우리 부부도 너무도 오랜 시간 집에서만 지낸 것 같다.


한나절 동안 남편은 1층. 나는 2층에서 물과 기름처럼 맴돌고 있다.

넓은 집에 혼자 있는데 왜 이렇게 답답한 건지, 부러 층계를 쿵쾅거리며 내려가서 싱크대의 그릇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참 갈 곳도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혼자 사는 친구 하나쯤 가까이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주변에는 왜 모두 금슬 좋은 부부들만 사는 건지..., 그것도 못마땅하다.


그동안 집콕을 하면서 화장은커녕 머리 손질 지 않았다. 파마를 할 때가 훨씬 지났지만 외출을 하지 않으니 외모에도 신경을 덜 썼다. 거울을 보니 심술 맞은 할망구가 서 있다.

뭐야 그래 봤자 나만 손해지. 얼굴의 근육을 풀고 억지로 웃어본다. 그래 넌 웃어야 해.

미장원을 가면 되겠구나 그곳에 가면 두 시간은 집을 벗어날 수 있다.


직원들은 모두 무급휴가를 보내고 혼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미용실 원장님이 반색을 한다. 이곳에서는 웬만한 동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았다며  앞으로 살 일이 걱정이라고 한다.  둘 다 마스크를 쓰고는 있었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것 같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가끔씩 마스크 안에서 숨을 참기도 하고 졸린 척 눈을 감기도 했다.

코로나란 놈이 인간성까지 변질시키고 있다.


장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꽃집에 들렀다. 꽃집 아줌마도 울상이다. 꽃이 피는 요즘이 장사 한 철인데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매상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온실에서 자란 꽃들은 빨리 땅에 심어주지 않으면 잎이 말라버린다고 한다. 과일만 시드는 줄 알았는데 꽃들도 마찬가지구나. 상추와 토마토 고추 모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에 키피 향이 구수하다


"머리 파마했네?


별일이다. 젊어서는 머리를 킨타쿤테처럼 볶고 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남편이 부부싸움 이후로 변한 내 머리모양을 금방 알아챘다,

때론 싸움도 진솔한 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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