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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an 16. 2021

내 인생을 닮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네

우리 집 뜰 앞에는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는 10년 전에는 아주 작은 아기나무였다. 나는 나무를 심은 적이 없다. 아마 내가 저곳에 나무를 심었다면 해마다 꽃과 과일을 함께 볼 수 있는 과실수를 심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들이 울타리에 앉아서 먹다 떨어트린 씨앗이 싹이 터서 지금껏 저렇게  자라고 있는 벚나무가 지금은 소중한 친구 같은 나무가 되었다.


제제에게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가 있듯이 나에게는 뜰안의 벚나무가 나의 나무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복 받을 만한 일을 베푼 적이 없는 내가 새들이 물어다 준 버찌 씨가 키운 나무를 바라보며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 감성 부자가 되는 복을 누리고 있다.


봄이면 한 그루 커다란 꽃다발이 되어 멀리 나가지 않고도 충분히 꽃놀이를 즐길 수 있여름이면 동그란 그늘 안으로 나를 자주 불러낸다.

까맣게 익은 버찌가 떨어지고 꽃에 버금가는 단풍으로 화려함을 선물하는 가을의 벚나무는 어느 인상파 화가가 그린 그림일까, 황혼 녘 노을을 받고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서 나 혼자 명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겨울, 앙상한 가지에도 새들이 찾아온다. 비록 빈 손으로 날아와서 쉬어가는 새이지만 가지는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그 흔들림을 나는 또 즐기고 있다.


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트리가 되어 우리 집을 환하게  밝히는  나의 나무   



                                                                        

우리의 서울살이는 무척 힘들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 힘 만으로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당연히 변두리의 작은 전세방에서 시작한 신접 살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새댁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좁아도 허술해도 마냥 좋았다. 남편의 월급에서 꼬박꼬박 부모님의 용돈을 드리면서 그 또한 당연히 여기며 살았다. 조금씩 적금을 부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때마다 행복의 자리도 그만큼씩 넓어졌다.


식구가 늘었다. 아이가 생기고 고향에서 시동생이 올라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게  시동생은 자연스럽게 나머지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형은 부모 맞잡이'라는 어원도 뜻도 모를 말은 장남의 아내를 옭아맸다.

다행히도 시동생은 형보다 살가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시동생이 첫 월급을 탄 돈으로 예쁜 양산을 선물했다. 그것으로 나의 고생은 보상되고도 남았다.


누가 심어 준 적 없는데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저 스스로 곧게 자란 벚나무에서 내 모습을 보는 건 그 때문이었다. 너도 나처럼 자수성가를 하였구나..., 


나의 나무는 그대로 나의 모습이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거기에 붙박이로 있지만 눈여겨 바라봐 주는 사람이 없다. 그가 어느 날 그곳을 떠난다면 그때야 사람들은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나무는 비록 한 그루 외롭게 서있지만 나에게는 사유의 숲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 넓은 바다 앞에 서면 가슴이 트이는 것처럼, 삶이 노곤할 때면 뜰로 나가 나무를 바라본다. 눈만 마주쳐도 기분 좋은 나무, 이럴 때면 지난날 내 행적에서 좁쌀만 한 선행이 있어 누군가 떨쳐주고 간 보은의 씨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느 시인의 강연장에서 누가 물었다. 시인님은 어찌 그렇게 예쁜 시어를 쓸 수가 있으세요 라고.... 시인은 ''나는 마음이 걸레처럼 더러워져서 마음을 빨기 위해 시를 쓴다''고 대답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술꾼은 술로, 시인은 아름다운 언어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나는 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랜다.


오늘 나는 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나무는 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가끔은 나의 수고를 누가 알아주었음 한다. 아무의 도움없이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삶을 넋두리 한다.

열 번도 더 넘게 들었을 나의 무용담을 처음 듣는 것처럼 조용히 경청하는 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로 바람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무가 오늘따라 유난히 추워 보인다.

진료를 상담한 의사에게 치유방법을 듣듯 나는 나무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 세상에는 자수성가란 말은 없어 까치가 씨앗을 떨어트려 주지 않았더라면, 흙이 뿌리를 감싸주지 않았더라면, 구름이 비를 내려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처럼 곧게 자라지 못했을 거야...


십 년이 넘게 함께 살면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던 내 나무가  나를 닮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껏 무용담처럼 늘어놨던  나의 삶은 혼자서만 이뤄낸 게 아니라며 나의 생색을 조용히 꾸짖는다. 


누군가는 그런 걸 울림이라고 한다, 책이 주는 가르침보다 더 큰 깨달음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나무에게 배웠다.

친구는 서로 닮는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겨우내 가지를 떠나지 않고 있던 까치에게 꽃눈을 빼앗기고도 저렇게 많은 꽃들을 매달고 있는 벚나무,

사랑이 많은  것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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