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pr 15. 2021

쑥 좀 캐 본 여자

어린 시절 생일 떡을 돌리 듯 떡을 렸다.

"아이구 웬 떡이에요"

"제가  쑥으로 들었답니다."

"쑥을 요? 정말요? 어디서요?"

내 여동생도 이웃 친구도 우리 딸도 모두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생일 떡을 돌리면 빈그릇과 함께 건네주던 이웃 아줌마들의 덕담이 참 듣기 좋았다. 그렇게 나눔을 배웠던지 서로 나눠 갖는 게 기쁘다. 특히 음식은 나눠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올봄, 한강변을 라이딩하면서 강변에 돋은 쑥을 보았다. 솜털이 보송한 쑥이 마른 풀숲에서 다른 풀들보다  먼저 연초록 잎새를 내밀고 있었다.


봄이면 옆집에 사는 언니를 따라 쑥을 캐러 다. 쑥을 캐기보다는 민들레 꽃을 꺾고 네 잎 클로버를 찾고 하얗게 핀 냉이꽃을 바라보며 노느라 내 광주리는 언제나 비어있었다. 쑥을 캐는 건 핑계이고 나는 그렇게 봄을 즐겼다.


향긋한 나물을 캐며 봄을 맞는 풍습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숲에서 버섯을 따는 일 말고 땅 속에서 갓 돋아난 풀잎을 캐서 식단을 차리는 일은 아마 우리나라 주부들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봄에는 순한 짐승처럼 사람들도 여린 싹을 먹는다.

쑥과 냉이 달래 등, 우리 땅 지천에 널린 봄나물을 캐서 먹기도 하고 두릅과 엄나무 오가피나무의 어린순을 따서 데쳐먹기도 한다. 쌉쌀머위와 쑥부쟁이 민들레의 잎도 어린싹은 봄 반찬으로 자주 만들어 먹곤 한다.


언제가 어느 유원지 입구에서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봄바람에 탄 거친 손이 안쓰러워 보였다. 할머니 앞에 놓인 수북한 돌 미나리를 사서 함께 간 일행과 나누기로 했다.


''할머니가 직접 캐셨나 봐요''

''그럼, 조선천지 내 손 안 닿은 데가 없어, 지금은 담뱃값이나 벌려고 나왔지만 이 두 손으로 식구들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했다우''

나물을 캐서 가족들을 부양했다고 한다. 들판에서 자라풀이 민초를 먹여 살린 것이다.


지금은 봄이 되어도 쑥을 캐는 이가 없다. 쑥은 많지만 캘 곳이 없다. 공원에서는 나물을 캐면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해 두었고 들판에는 농약에 오염되어 자칫 몸에 해롭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제법 멀리 외곽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어린 쑥을 만났을 땐 무척 반가웠다. 누가 뭐래도 이젠 봄이지 저것 봐 쑥이 돋았잖아?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서 하며 쑥을  뜯었다.

연하디 연한 쑥을 손으로 캐느라 손톱에 쑥물이 들었다. 

이만큼이면 충분하겠지? 족히 한 움큼은 되는 쑥으로 그날 저녁 쑥국을 끓였다. 멸치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한 소쿰 끓기 시작할 때 씻어 둔 쑥을 집어넣는다.

상큼한 쑥 향기가 온 안에 퍼진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면서 매일 변하는 봄 풍경을 맞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외곽으로 나갈수록 봄 풍경이 선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뜯은 쑥은 부침가루를 넣어서 쑥전을 부쳐 우리  부부의 술안주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인터넷에서 알려준 레시피대로 봄 도다리 쑥국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

러다가 쑥 광맥을 발견했다. 강바람을 맞고 자란 쑥들이 누가 심어놓은 듯이 벌판 가득 쑥 천지였다.

                              


쑥떡.

그래 쑥떡을 만들자. 조금 무모한 도전이기는 하지만 저 쑥만 캔다만들 수 있을 것 같았.

이제는 라이딩을 하다가 쑥을 캐는 게 아니라 쑥을 캐기 위해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토실하게 자란 쑥을 한 손으로 잡고 살짝 젖힌 뒤 과도로 뿌리를 잘라주면 싱싱한 쑥이 내 손아귀로 들어온다. 향기는 덤이다.

어린 시절 옆집 언니를 따라다니며  좀 캐어 본 여자답게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게 캔 쑥이 금세 수북하다.

얼마나 캤을까?

오늘은 이 만큼만 하자. 사실은 허리가 아팠다.

그날 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천장에 토실한 쑥들이 보였다. 낮에 캐지 못하고 두고 온 쑥이 눈에 아른거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쑥을 캤다.


불린 찹쌀과 함께 삶아놓은 쑥을 가지고 떡 방앗간으로 갔다.

"쑥이 너무 적네"

내 딴에는 꽤 많이 캐서 삶았다고 생각했는데 쑥이 거의 쌀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쌀을 반으로 줄여볼까? 늦어도 좋으니 쑥을 더 준비해 오라고 한다.

모자라는 쑥을 사러 슈에 갔다.

식료품 좌판에 쑥이 있다. 그런데 그 값이 만만치가 않다.

쑥을 채우려면 꽤 많은 쑥 값을 치러야 할 것 같다. 그 보다는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쑥떡은 오롯이 내가 캔 쑥으로만 만들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텃밭 시장으로 가는 시골 아낙처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쑥밭으로 달렸다.

슈퍼에서 쑥 값을 알고 나니 쑥이 널려있는 들판이 더욱 귀해 보인다. 자식들 이고 입히고 가르쳤다는 할머니의 말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드디어 말랑말랑 쫀득한 초록색 예쁜 떡이 완성되었다. 콩가루를 묻히지 않은 인절미다. 한 사람이 먹을 만큼 잘라서 비닐백에 담으니 작지 않은 두 개의 박스에 가득 담긴다. 콩가루는 따로 사서 취향에 맞게 만들어 먹을 요량이다.

왠지 큰일을 해 낸 것처럼 뿌듯하였다. 

뜨끈할 때 먹어야  맛이지..., 떡 방앗간에 온 손님들에게 한입씩 건네고 어린 시절 생일 떡을 돌리 듯 지인들에게도 쑥떡을 돌렸다.

내가 캔 쑥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절대로 빠트지 않았다.


쑥떡을 먹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은 말을 한다.


"쑥떡이 너무나 맛있어요"

"쑥을 어디서 캤어요?"

"이다음엔 나도 데리고 가줘요"


내년 봄에는 함께 쑥을 캐러 가자는 지원자가 많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줄 아세요?"

쑥 면접관이 묻는 첫 관문에서 대부분 탈락이다.


내가 캐서 더욱 맛있는 봄 쑥떡, 뒤늦게 쑥떡 맛을 알아버렸으니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쑥을 캐러 갈 것이다.

이전 10화 내 인생을 닮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