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Jul 06. 2021

능소화 꽃이 피었습니다.



요즘 우리 동네는 능소화가 한창입니다. 나팔 모양의  주홍색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늘어진 모습 초여름의 동네 경을  멋지게 연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집 대문 곁에도 오래된 능소화나무가  한그루 습니다. 키의 콩나무처럼 어찌나 쑥쑥 잘 자라는지 몇 해만에   줄기가 이층 창가까지 넘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가를 기웃거리는 능소화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녕? 내 마음에 분홍빛깔이 물들기 시작합니다. 엊저녁에 내린 비로 오늘 아침 능소화 꽃잎은 더욱 말간 얼굴빛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호수를 가슴에  달고 있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 주택은 각자 애칭처럼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우리 집은 코너 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파랑 대문 집, 돌담장 집, 빨간 지붕 집, 등 주로 집의 외형을 보고 붙인 이름이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나름 삭막함은 면한 이름이지요.


얼마 전까지  장미가 피어있던 담장에  지금은 능소화가 늘어져있니다. 능소화는 더는 오를 데가 없는지 이제 그 곁에 있는 전봇대를 타고 열심히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이왕이면 사람들이 우리 집을 코너 집이 아닌 능소화나무 집이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고 했다가 아차, 우리 동네에는 집집마다 능소화나무가 있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바꾸었답니다.


오늘 아침은 대문 옆 길가에 수북이 떨어진  꽃잎을 쓸다가 언뜻 내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음을 알았습니다.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이 쓰신 수필을 읽고서 였습니다. 아마 무전여행을 나섰던가 봅니다. 시골집에서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한밤을 지내고 나서 다음날 아침 싸릿 대문 옆에 세워둔 대빗 자루로 그 집 마당을 깨끗하게 쓸어주고 나왔다는 글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언젠가는 나도 대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 빗자루 끝에는 허접스러운 쓰레기 말고 마른 꽃잎이 쓸려져 나온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낮은 언덕의 골목길 코너에 위치한 우리 집은 낙엽들의 정류장입니다. 주로 소나무 잎이나 대나무 잎들이 떨어져 있곤 하지요 모두 이웃집 정원에서 날아온 것들입니다. 요즘에는 언덕 위에서 굴러오는 살구가 온통 널브러져 있습니다. 철마다 대문 앞에서 쉬어가는 것들이 다릅니다. 늦은 봄과 초여름에는 살구가, 조금 후면 가을바람에 떨어진 풋이 줄줄이 굴러오게 될 겁니다.


다른 집은 그렇지 않은데 유난히 내 집 앞에 낙엽이 많은 것은 기역자로 꺾인 길가 코너에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덕 위에서 기운차게 불어온 바람이 방향을 꺾으면서 그 기운을 잃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을 청소하는 남편은 가끔 불평을 하곤 합니다.


오늘 우리 집 대문 앞은 떨어진 능소화 꽃이 수북합니다. 꽃이 진자리에서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두고 보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뭉개지고 으깨져서 꽃잎이 초라해져 보일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잎을 짓밟기 전에 수북이 떨어진 능소화 꽃잎을 쓸었습니. 

빗자루 끝에 능소화 꽃들이 모아지고 나는 비록 마당이 아닌 골목길이지만  마당에서 꽃잎이나 쓸며 살고 싶다는 오래전 내 소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집 이층 서재에서 내려다보면 옆집의 정원이 훤히 보입니다.

옆집 능소화는 죽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느 게 죽은 가지이고 어느 게 제 가지인  줄 모를 만큼 감쪽같이 죽은 가지를 변화시켜 놓았지요 변화를 준 건 죽은 나뭇가지뿐이 아니랍니다.

능소화가 활짝 피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앞집의 지붕은 유난히 눈에 띄는 붉은 지붕이었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활짝 핀 능소화와 지붕 색깔은 분별하기가 어려울 만큼 닮아있었답니다. 저렇게 품위 있는 능소화 빛 지붕이었다니..., 능소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앞집의 붉은 지붕에  대하여  별 애착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능소화는 이렇게 주변 모든 것과 함께 어울려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해 질 녘  천천히 동네 산책을  나섭니다.  능소화가 동네를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능소화 빛 지붕과 지붕 빛 능소화

이전 12화 옥상에서 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