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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28. 2020

반려견과 함께 초저녁 동네 산책길

이른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섭니다.  서쪽하늘은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고 반대편 하늘은 투명한 물빛으로 한낮에 달궈진 건물들의 체온을 서서히 식혀주고 있습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따뜻한 해의 온기와 밝음이 잠시 무르는 시간, 어슴푸레한 저녁 하루의 끝에 있습니다.

시간에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늙은 반려견을 데리고 천천히 젊은 날 그가 뛰어다니며 새를 맡곤 던 골목의 구석구석을 산책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부터 시작한 산책이 그새 초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일 걷는 똑같은 이지만 동네 골목길은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나리가 지고 목련과 라일락이 피고 지더니 어느새 장미의 계절입니다. 다양한 색깔의 장미꽃들이 향기를 내뿜는 이 시간은 반려견들의 시간입니다. 동네의 모든 개들이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합니다. 강아지들은 저희끼리 알아보고 짖으며 서로 핥고 냄새를 맡지만 우리 집 노견에게는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강아지들도 어른 개는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개들끼리 친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서로 어울리지 못합니다. 지들끼리 모른 척 스치고 지나가 듯 강아지 주인들도 그저 눈인사만 하며 지나갈 뿐입니다.


어머나 귀여워라

얘는 몇 살이에요?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에도 소외감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나도 자식 같은 강아지가 예쁘다는 말에 기운이 절로 나고 때론 으쓱할 때도 있었답니다.

하얀 털이 온몸을 몽실하게 감싸서 눈사람처럼 보이던 비숑프리제가 요즘엔 눈밑에 눈물자국이 번져서 하얗던 얼굴이 갈색으로 번지고  털도 엉성해져서 누가 봐도  종(種)이 애매한 강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강아지를 산책시킨 뒤에 목욕을 하고 빗질을 하는데 나는 산책 전에 깨끗이 씻겨주고 곱게 빗질을 합니다.

혹시나 예쁘게 꾸미고 나가면 어린 강아지들이 눈길을 줄까 해서이지요. 하지만 강아지들은 냄새로 상대의 정보를 안다고 하지요 내 노력은 매번 허탕을 치고 맙니다

     왠지 뒷모습이 닮은 듯한  우리 둘 만의 산책길


장미가 시들면서 동네는 진분홍 능소화가 늘어진 여름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해는 길어지고 저녁이 되어도 주위 마냥 습니다. 아마 일 년 중 가장  하루가 있는 계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때쯤이면 동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옵니다

베란다에 놓인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동네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이웃과 꽃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꽃 이름은 뭐예요

씨앗 좀 나눠 주실 수 있어요?

가을이면 씨앗이 여물 거예요


이제 걷기도 버거워서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해야 하는 노견은 정원에서 나누는 이 대화가 아마 조금 길어질 것이란 걸 아는지 조용히 유모차에 얼굴을 기대 기다려 줍니다.



아직 남아있는 노을을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 골목 끝 공원으로 가는 길로 향합니다. 이 길은  나도 우리 강아지도 그동안 수없이 다녔던 산책길입니다.


골목의 집들은 모두 창문이 열려 있어서 부엌에서 그릇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혹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떠들며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집에서는 피아노를 치는 소리도 들립니다. 저녁 무렵의 골목길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소리가 붐비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리뿐 아니라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 구수한 냄새도 골목으로 새어 나옵니다.

예전이라면 이 길에서 우리 강아지는 맛있는 냄새에 공복을 느끼고 간식을 달라고 졸랐을 것입니다.


골목 끝, 몇 개의 층계를 올라서면 산비탈이 나타납니다.

두어 개의 층계를 오르다가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는 강아지를 가슴에 앉습니다. 따뜻합니다.

안으면 팔딱팔딱 뛰는 내 반려견의 심장박동 소리, 이 촉감을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요.., 붉은 노을이 번져보입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산책길과 그네, 벤치가 놓여있는 이곳이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에는

한때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답니다. 새 아파트의 입주 딱지를 받고 사람들이 떠난 그곳에는 주인이 버리고 간 개들이 들개가 되어 떠돌던 곳이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주인을 만나서 하루아침에 떠돌이가 되어버린 개들은 자신의 삶처럼 헝클어진 털을 세우고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 그들의 외모는 변했지만 눈망울만은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이 담겨 있더군요


강아지를 기르지 않는 사람들은 동물에게 무슨 감정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표현을 못 할 뿐 그들도

사람과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슬프고, 기쁘고, 반갑고, 아프고, 그리워하고..., 어쩌면 그중에서도 주인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만은 사람보다도 더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짧은 생을 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주고 가려는 듯 애교도 담뿍 사랑도 담뿍 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 노견이 되어 모든 게 전과 다른 우리 집 반려견은 아직도 우리 자동차의 크랙션 소리를 기억하고 멀리서 자동차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흔든답니다.


열일곱 살이 된 우리 강아지. 나에게는 언제나 아기 같아서 지금도 강아지라고 부르지만 들의 나이로는 백수를 누린 할아버지랍니다.


붉은 노을이 점점 옅어지면서 공원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의 꼬리가 지나가는 시간....,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와 함께하는 그 시간을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싶습니다


                                            봄과 여름의 동네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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