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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30. 2020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일기예보에서 태풍과 맞먹는 바람이 분다고 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우리 집 화단의 주목나무에서는 종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에는 유일하게 대문에 초인종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누구 하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린 적은 없다. 낮은 대문의 빗장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담벼락에 늘어진 기다란 줄이 있다. 그 끈을 흔들면


뎅그렁.., 딩.... 동..., 하고  종소리가 울린다


우리 집 초인종은 주물로 만든 작은 종이 대신한다. 종은 주목나무 가지에 걸려있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무슨 종을 달았냐고 할지 모른다. 내 아이들이 그랬다. 종소리는 관두고라도 지금껏 현관문에 번호키를 달지 않는 집은 아마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고 은근히 투정을 부린다.

나는 아날로그 엄마다. 번호키는 쉽고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왠지 싫다. 번호키를 달려면 현관문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현관문에 상처를 내기 싫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긴장감이 풀린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대신 열쇠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우리 집 초인종


오늘처럼 바람이 꽤 세게 부는 날은 우리 집 종은 풍경소리로 바뀐다. 마치 실로폰을 두드리듯 청명한 종소리가 음악소리와도 같다. 바람이 만든 교향곡쯤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제  우리 집 종소리만 듣고도 누가 왔는지 안다.

''뎅뎅뎅'' 정확하게 울리는 세 박자 종소리는 귀여운 손녀딸이 치는 종소리다, 조금 늦게 문이라도 열면 ''뎅뎅 뎅뎅뎅'' 하고 정확히 다섯 번을 더 울린다. ''빨리 문 열어 ''라고 외치는 종소리다.

크고 묵직하게 두 번 울리는 종소리는 외출하고 돌아온 남편이 울리는 종소리, 서너 번 가볍게 치는 종은 딸아이가 치는 종소리. 아무렇게나 ''땡''하고  울림도 없이 사라지는 종소리는 슈퍼마켓 아저씨가 현관에 장을 본 물건을 두고 바쁘게 돌아간다고 알리는 종소리다.


처음 종을 달게 된 것은 초인종으로 사용하기 해서가 아니라 식구들에게 식사시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아래층에 있는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위층에 있는 아이들을 부르려면 매일 신경전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아침마다 머리를 말리는 딸아이의 헤어 드라이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버리기 때문에 나는 거의 고함을 질러야 했다. 종을 달아 둔 후, 아이들은 내가 부를 때보다 빠르게 식탁 곁으로 내려왔다.


아침저녁 정확하게 종을 울리던 두부장수 엄마도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모두 곁을 떠나면서 종을 칠 일이 사라져 버렸다.

집안에서 내가 아이들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자 밖에서 아이들이 나를 부르고 들어왔다.


대문 옆에 달려있던 차임벨을 뗀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시도 때도 없이 벨을 눌러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중학교가 있어서 등 하교 시에는 학생들의 통행이 잦았다. 사춘기 중학생들의 장난은 가끔 도가 지나쳤다. 그중에 아무 집이나 차임벨을 누르고 도망치는 짓궂은 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집 안에서 필요 없게 된 종을 밖에 있는 주목나무에 걸어 두고 대신 차임벨을 없애버렸다. 


종소리는 생각보다 멀리서도 잘 들린다, 벨을 누르지 않고 종을 치고 들어 오는 게 처음에는 익숙치 않던 가족들도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좋아하였다. 무엇보다도 종을 울리면 도심이 아닌 전원주택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내가 치는 종이 아니라 아이들이 치는 종소리를 내가 들어야  한다.


예전에 우리 집에는 집이 좁다고 느낄 만큼 손님들이 많이도 들락거렸었다. 시댁 어른이 오시면 시어머님을 뵈러 형제들이 모이고 아들 딸 친구들도 내 집인양 드나들었다. 이웃에 사는 친구들도 오며 가며 들리던 집이었다.


세월은 어느새 우리 부부를 집안의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다. 시어른이 계시지 않은 집은 형제들의 방문도 뜸하다. 이웃들도 그 사이 이사를 가버려서 전날의 정스러운 풍경은 사라졌다.

이제는 시집간 딸아이와 독립하여 나가서 살고 있는 아들이 가끔 들를 뿐, 널찍한 집안에 우리 부부만 서로 바라보고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가 울리든 종소리는 반갑다.


"뎅그렁 딩 동...,"

하루에도 몇 번씩 더 많이 자주, 종이 울리기를 바라고 종소리가 들리면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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