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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10. 2020

빈티지한 사람이 좋다.

오래된 것은 낡았다. 세월은 본래의 색과 모양을 변하게 하여 시간이 쌓인 것은 누구에게나 외면받는다. 하지만 오래된 것에게도 한가닥 희망이 있다.

 

빈티지..., 낡고 헐고 퇴색된 구물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단어다.


빈티지는 세월을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것을 말한다. 그것은 세월의 멋이 스며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새로움을 주기도 한다,

가구든 사람이든 빈티지한 것이 좋다.


결혼 한지 40년, 우리 집 살림살이 중에는 나보다 먼저 빈티지스러워진 물건들이 있다. 이것들은 해가 갈수록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빈티지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함께 산 세월이 길어졌고 매 년 쓸데없는 짐들을 정리할 때마다 살림살이 해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견고한 탁자와 식탁 그릇장 등은 내 살림의 연륜도 말해 주지만 자신의 가치도 그만큼 높아져서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품위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낡았다고 다 빈티지하지는 않다. 세월의 풍상을 오롯이 품고 있는 것은 그만의 멋이 담기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면 낡아버린 게 된다.

빈티지의 개념에는 그래서 오래됨과 멋.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공존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한 나의 살림살이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그릇 장식장은 단풍나무로 만든 원목 가구다. 신혼시절 남편에게 받은 첫 월급으로 산 물건이어서 햇수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앤티크 가구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신 취향대로 신혼가구를 장만해 주셨다. 커다란 봉황이 그려진 자개장농과 목단꽃이 두리둥실 피어 있는 포마이카 찬장이 집안의 반절은 차지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집들이를 오기로 한 날, 나는 생전 써보지 못한 거금을 들고 가서 그동안 눈여겨봐 둔 원목 장식장을 구입했다. 그 후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나는 그것을 꼭 데리고 다녔다.

장식장은 원래 두 개가 한 세트로 진열되어 있었지만 내 형편으로는 한 개 밖에 살 수 없어 또 하나의 장식장은 3년이 지난 후에 따로 구입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장식장의 질감이 3년의 세월만큼 차이가 난다.


어느 날 누군가 밖에 내다 버린 헌 가구 중에 우리 장식장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하물며 내가 샀던 가구와 같은 브랜드였다.

저걸 버리다니..., 사실 값으로 따지면야 요즘 신식 가구에 비할 게 못되지만 괜히 내 물건이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물건도 지닌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품고 있는 내 물건은 빈티지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유행에 떠밀려 저렇게 쓰레기가 되고 마는구나....,    


사람도 물건과 다르지 않다.

어느 분야에서건 풍상을 잘 견뎌 내고 멋스러움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 험한 일을 해도 고급스러워 보이고 품위를 잃지 않는 빈티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과대평가하여 누군가가 알아 봐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며칠 전,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1층 현관 처마 위에서 물이 뚝뚝 세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집을 다 수리하였는데 웬일일까, 큰 공사가 아니길 바라며 전문가를 불렀다. 소위 일류 기술자라는 분을 소개받았다. 본인을 포함하여 네 명의 인부들을 거느리고 다. 보일러를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고 여기저기 점검을 하다가 돌아갔다. 다음 날 누수탐지기를 들고 두 명의 기사님이 합류하면서 집 안에 여섯 명의 인부들로 꽉 찼다. 다행히 누수가 된 지점을 바로 찾았다. 집수리를 하시는 분 말대로 일하기 수월한 곳이 물이 세서 다행이라고 했지만 나는 누가 봐도 한눈에 보이는 거실 마루 바닥을 뜯어야 하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A4 용지 넓이만큼 바닥을 고 구멍 난 온수배관을 때우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일류 기술자라는 분이 혼자서 일을 하는 동안 나머지 인부들은 주변에서 서성거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물며 중간에 재료를 사다 주는 일도 남편이 대신하였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우리가 뒷수습을 하는 동안 모두들 인사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수리해 준 비용이 얼마인지 알려주지 않고 수고했다는 말도 해 줄 사이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개해 준 분에게 전화를 했다. 곧 연락이 왔다 자신의 계좌로 백이십만 원을 보내달라고 한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요즈음 기술자의 인건비가 비싼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루 종일도 아닌 2시간 작업에 백이십만 원은 너무 하다. 일은 한 사람이 했는데 함께 온 인부의 일 삯까지 받아가는 요량이다. 말없이 사라진 것은 아마 자신들도 면전에서 큰돈을 요구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일을 마치면 서로 인사는 하고 가는 게 도리가 아닌가? 전에도 이처럼 집을 고친 일이 있지만 그때에 비해서 요구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전화기 너머로 자신은 동네 막일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대단하신 기술자님이시다.


그런가 하면 우리 집 지붕을 고쳐주신 아저씨는 같은 일을 해도 달랐다. 오래전, 지붕의 물받이를 모두 교체하고 입금까지 마무리했다. 지붕을 고치고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저씨가 검은 우산을 받쳐 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자신이 고친 물받이가 세는 곳이 없는지 확인하러 오셨다고 한다. 감동이 밀려왔다. 자신이 하는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려는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느꼈다. 지붕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느라 비까지 맞아서 후줄근해 보이는 모습이 마냥 멋져 보였다 이런 게 빈티지가 아니었나?


가구든 사람이든 나는 빈티지한 것이 좋다. 나 잘나지 않았어요라고 해도 잘나 보이는 사람, 멋 부리지 않아도 멋있는 사람, 오래될수록 새로운 멋이 스며드는 빈티지 가구처럼 은은한 멋이 풍기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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