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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연희동 김작가
Apr 15. 2021
쑥 좀 캐 본 여자
어린 시절
생일 떡을 돌리 듯 떡을
돌
렸다.
"
아이구 웬 떡이에요"
"
제가
캔
쑥으로
만
들었답니다.
"
"쑥을 요?
정말요? 어디서요?"
내 여동생도 이웃 친구도 우리 딸도
모두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
어머니
심부름으로
생일 떡을
돌리면
빈그릇과
함께
건네주
던 이웃 아줌마들의 덕담이 참 듣기 좋았다. 그렇게 나눔을 배웠던지
서로
나눠
갖는
게 기쁘다. 특히 음식은 나눠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올봄,
한강변을 라이딩하면서
강변에 돋은 쑥을 보았다.
솜털이 보송한 쑥이 마른
풀숲에서
다른 풀들보다
맨
먼저 연초록
잎새
를 내밀고
있었다.
봄이면
옆집에 사는
언니를
따라
쑥을 캐러
갔
다.
쑥을
캐기보다는 민들레 꽃을 꺾고 네 잎 클로버를 찾고 하얗게 핀 냉이꽃을 바라보며 노느라 내 광주리는 언제나 비어있었다
.
쑥을 캐는 건 핑계이고 나는 그렇게 봄을 즐겼다.
향긋한 나물을 캐며 봄을 맞는 풍습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숲에서 버섯을 따는 일 말고 땅 속에서 갓
돋아난 풀잎을 캐서 식단을
차리
는 일은 아마
우리나라
주부들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봄에는 순한 짐승처럼 사람들도 여린 싹을 먹는다.
쑥과 냉이 달래 등, 우리 땅 지천에 널린 봄나물을
캐서
먹기도 하고
두릅과
엄나무
오가피나무의
어린순을
따서
데쳐먹기도 한
다.
쌉쌀
한
머위와
쑥부쟁이
민들레의
잎도
어린싹은
봄 반찬으로 자주 만들어 먹곤 한
다.
언제가 어느 유원지 입구에서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봄바람에 탄 거친 손이 안쓰러워 보였다. 할머니 앞에 놓인 수북한 돌 미나리를 사서 함께 간 일행과 나누기로 했다.
''
할머니가 직접 캐셨나 봐요''
''
그럼, 조선천지 내 손 안 닿은 데가 없어, 지금은 담뱃값이나 벌려고 나왔지만 이 두 손으로 식구들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
치고 했다우''
나물을 캐서 가족들을 부양했다고 한다.
들판에서
자라
는
풀이 민초를 먹여 살린 것이다.
지금은 봄이 되어도 쑥을 캐는 이가 없다. 쑥은 많지만 캘 곳이 없다. 공원에서는 나물을 캐면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해 두었고 들판에는 농약에 오염되어 자칫 몸에 해롭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제법 멀리 외곽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어린 쑥을 만났을 땐 무척 반가웠다. 누가 뭐래도 이젠 봄이지 저것 봐 쑥이 돋았잖아?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서 하며 쑥을 뜯었다.
연하디 연한
쑥을
맨
손으로
캐느라 손톱에
쑥물이 들었다.
이만
큼이면 충분하겠지?
족히 한 움큼은
되는
쑥으로
그날 저녁 쑥국을 끓였다.
멸치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한 소쿰 끓기 시작할 때 씻어 둔 쑥을
집어넣는
다.
상큼한 쑥 향기가 온
집
안에 퍼진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면서 매일 변하는 봄 풍경을 맞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외곽으로
나갈수록 봄 풍경이 선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뜯은 쑥은
부침
가루를 넣어서
쑥전을 부쳐
우리 부부의 술안주가 되
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인터넷에서
알려준 레시피대로 봄 도다리 쑥
국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
그
러다가 쑥 광맥을 발견했다. 강바람을 맞고 자란 쑥들이 누가 심어놓은
듯이
벌판
가득 쑥 천지였다.
쑥떡.
그래 쑥떡을 만들자.
조금
무모한 도전이기는 하지만
저 쑥만
캔다
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
다
.
이제는 라이딩을 하다가 쑥을 캐는 게 아니라 쑥을 캐기
위해 라이딩을
하게 되었
다.
토실하게 자란 쑥을 한 손으로 잡고 살짝 젖힌 뒤 과도로 뿌리를 잘라주면 싱싱한 쑥이 내 손아귀로 들어온다. 향기는 덤이다.
어린 시절
옆집 언니를
따라다니며
쑥
좀 캐어 본 여자답게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게 캔
쑥이 금세 수북
하다.
얼마나 캤을까?
오늘은 이 만큼만 하자. 사실은 허리가 아팠다.
그날 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천장에 토실한 쑥들이 보였다. 낮에 캐지 못하고 두고 온 쑥이 눈에 아른거린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쑥을 캤다.
불린
찹쌀과 함께 삶아놓은 쑥을 가지고
떡 방앗간으로
갔다.
"
쑥이
너무 적네
요
"
내 딴에는 꽤 많이 캐서 삶았다고 생각했는데 쑥이 거의 쌀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쌀을 반으로 줄여볼까? 늦어도 좋으니 쑥을 더 준비해 오라고 한다.
모자라는
쑥을 사러 슈
퍼
에 갔다.
식료품
좌판에 쑥이
있다. 그런데 그 값이 만만치가 않다.
쑥을 채우려면 꽤 많은 쑥 값을 치러야 할 것
같다. 그 보다는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쑥떡은 오롯이 내가 캔
쑥으로
만 만들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텃밭 시장으로 가는 시골 아낙처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쑥밭으로 달렸다.
슈퍼에서 쑥 값을 알고 나니 쑥이 널려있는 들판이 더욱 귀해
보인다. 자식들
먹
이고 입히고
가르
쳤다는 할머니의 말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드디어
말랑말랑 쫀득한
초록색
예쁜
떡이 완성되었다. 콩가루를 묻히지 않은
쑥
인절미다. 한
사람이 먹을 만큼 잘라서
비닐백
에 담으니 작지 않은
두 개의
박스에
가득 담긴
다.
콩가루는 따로 사서 취향에 맞게 만들어 먹을 요량이다.
왠지
큰일을 해 낸 것처럼
뿌듯하였
다.
뜨끈할
때 먹어야
제
맛이
지...,
떡 방앗간에 온 손님들에게 한입씩 건네고
어린 시절
생일 떡을 돌리
듯 지인들
에게도 쑥떡을
돌렸다.
내가 캔 쑥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절대로
빠트
리
지 않았다.
쑥떡을 먹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은 말을 한다
.
"쑥떡이 너무나 맛있어요"
"
쑥을 어디서 캤어요
?
"
"이다음엔
나도 데리고 가줘요
"
내년 봄에는
함께
쑥을
캐러 가자는
지원자가
많다
.
하지만
"
자전거를 탈
줄 아세
요?
"
쑥 면접관이 묻는 첫
관문에서
대부분 탈락이다.
내가 캐서 더욱 맛있는 봄 쑥떡,
뒤늦게
쑥떡
맛을 알아버렸으니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쑥을 캐
러 갈
것이다.
keyword
봄나물
쑥떡
음식
Brunch Book
벗을수록 따뜻한 산문집
09
부부싸움 그 후
10
내 인생을 닮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네
11
쑥 좀 캐 본 여자
12
옥상에서 놀다
13
능소화 꽃이 피었습니다.
벗을수록 따뜻한 산문집
연희동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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