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갈아요 가위 갈아요''
한 달에 두 어번 아직도 우리 동네에는 부엌칼이나 가위를 갈아주러 다니는 할아버지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연장을 실은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돌리며 동네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할아버지는 일감이 나타나면 아무 곳이나 그늘에 주저앉아서 칼을 간다. 처음에는 풀무처럼 손잡이를 돌려 가는 기계에 초벌 날을 간 뒤에 이내 숫돌에 슥슥 날을 세운다. 햇빛에 반사되어 쨍하고 비치는 날을 확인하기까지 십여분쯤의 시간이 걸린다. 요즘에는 직접 소리를 지르지 않고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스피커로 계속 틀어놓고 다니는 것 외에 전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할아버지 칼 가는 값이 얼마예요?"
담장 너머로 할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한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솟아오르며 값을 묻는다.
"예 부엌칼은 오만 원이고 과도는 이만 원이요, "
엑? 하고 놀라다가 이윽고 동그라미 하나를 더 얹어서 값을 부르는 게 할아버지식 유머라는 걸 눈치챈 노부인이 가만히 계셔 보라며 칼과 가위 과도를 들고 나온다.
칼 가는 소리..., 괴기영화 속에서는 음산한 배경으로 깔리는 이 소리가 우리 동네에서는 할아버지가 안 계시면 사라져 버리는 그리운 소리가 되어 사각사각 골목길을 번져간다.
'밥줄'이라는 말은 참 절박한 단어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직업이 더는 이 사회에서 요구하지 않게 되고 또는 나보다 더 실력 있는 누군가에게 밀려나면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기게 된다.
할아버지는 칼 가는 일이 밥줄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게 편리하고 과학적으로 변하였지만 (심지어 집집마다 칼 가는 숯돌도 있다) 용하게도 할아버지는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할아버지에게는 경쟁자가 없었나 보다. 남들이 시시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이 직업을 할아버지는 평생직업으로 삼고 있다.
마흔 살 때부터 시작해서 40년 동안 칼 가는 일을 하셨다는 할아버지는 이제는 그 일이 밥줄처럼 절박하지는 않은 듯하다.
한 때는 양복점과 양장점의 가위를 주기적으로 갈아주고 명절 즈음이면 일이 밀려서 점심 먹을 시간도 없었다는 할아버지가 시원한 그늘에서 칼을 갈아주며 옛날이야기처럼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한다.
''요즘에도 가위를 가는 양장점이 있나요?''
''있지요''
우리 동네에는 '꽃잎 의상실'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아직도 있다. 지금도 예전의 단골손님들은 꾸준히 그곳에서 옷을 맞춰 입는다고 한다.
40년 전 공무원 월급이 쥐꼬리만 할 때 나는 공무원 생활을 했다. 아무리 월급이 적어도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의 아가씨는 단골 양장점에서 옷을 맞추고 월급날 찾은 옷을 바로 입지 못하고 걸어만 두고 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고 나섰다. 나의 단골 양장점에는 단골들의 몸 치수를 잰 기본 원형 패턴들이 한쪽 벽에 핏이 되어 있었다.
내 옷을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입던 그 시절이 좋았다.
우리 동네 의상실
할아버지의 일터
할아버지에게 칼을 맡겨보고 싶었다.
칼이 잘 들어야 할 만큼 섬세한 요리를 하지 않을뿐더러 그저 좀 무디다 싶으면 접시 뒤축에 슬슬 문질러 쓰거나 아님 숯돌이 달린 손잡이 칼갈이에 몇 번 갈아서 쓰곤 했는데 며칠 후면 시아버님의 기일이 다가오고 그날엔 어김없이 고기 힘줄을 걷어내느라 무딘 칼과 씨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과도와 부엌칼을 할아버지께 맡겼다.
딸아이를 결혼시킬 때 살림살이로 주려고 해외여행 중에 장만한 칼이었는데 누군가 칼은 친정어머니가 아닌 시어머니가 준비해 줘야 한다는 속설을 말해 주길래 귀가 얇은 나는 사 둔 칼을 주지 않고 그냥 내가 사용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묵직한 칼을 건네드리자 할아버지는 ''어이쿠 손좀 다치셨겠네요 ''라고 하신다.
''칼이 안 들었으니 망정이지 잘 들었다면 손 많이 다쳤을 거예요''라고 하자
'무딘 칼에 손을 베이는 법'이라고 하시며 칼은 잘 들수록 안전하다고 한다.
급하게 칼질을 하다가 손톱을 몇 번 날린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날카롭지 않은 칼 날 덕분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오히려 무딘 칼에 손을 베인다니...,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는 무딘 칼을 사용하면서 칼을 겁 없이 대했다.
상대를 무시하면 신중함이 떨어진다. 신중하지 않으니 다칠 수밖에,
살면서 무딘 칼처럼 대접을 받은 적도, 남을 무딘 칼처럼 대한 적도 있었다.
여자라는 성별 차이로 사회적으로 무딘 칼이 된 적도 있고 며느리를 무딘 칼로 여기는 시어머니의 부당함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무딘 칼 같은 남편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마치 도인처럼 칼을 다뤘다. 하긴 한 가지 일을 40년 씩이나 했으면 도를 터득 할 만도 하겠다.
잘 갈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칼을 할아버지께서 건네주신다.
조심스럽게 받아놓았다.
나는 건강하게 사셔서 오래오래 이 일을 계속하셨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시원한 얼음물 한 잔과 수고료를 할아버지께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