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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공항으로 간다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은 평소 내가 사랑하던 것들과 잠깐의 이별만 견딘다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함께 사는 반려견과 기르는 열대어, 그리고 뜰안에 있는 화초와 올망졸망한 화분 앞에서 잠시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만 이들과 나누는 아쉬움의 인사도 어쩌면 여행의 시작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다

지면과 부딪혀 “돌돌돌” 소리 나는 캐리어의 바퀴소리를 들으며 집 앞 골목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약간의 두려움조차 설렘에 묻혀버린다.

만남과 헤어짐,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의 감정이 교차되는 공항 안의 술렁거림이 나는 좋다.


공항은 나와 인연이 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남편과 결혼하여 신접살림을 차린 곳이 공항과 이웃한 동네였다. 서울살이도 처음이지만 이처럼 가까이서 비행기를 바라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에 바퀴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고 뱃가죽을 훤히 드러 낸 비행기의 동체를 바라보는 것도 처음이다.


비행기소음을 지겨워하는 이웃사람들과 달리 나는 특별한 환경을 무덤덤하게 여겼다.

소리가 닫힌 방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뷰는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은빛 비늘을 가진 커다란 물고기가 하늘 위를 헤엄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꿈을 꾸듯 바라보곤 하였다.


꿈은 가끔씩 현실로 다가왔다. 비행기 안에서 전에 살던 동네를 내려다보는 일이 있을 때면 하늘이 아닌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눈으로 아득히 멀어지는 동네를 바라보곤 한다.

해외출장으로 자주 비행기를 타야 하는 지인이 자기는 아직도 몇백 톤이나 되는 육중한 물체가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게 신기할 뿐 아니라 돌풍을 만나 조금만 기내가 흔들려도 신을 찾는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신뢰하는 게 더 신기하다고 하였다.


비행기를 타면 현실과 환상 중간쯤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공항에서의 설렘과 달리 이륙할 때의 오금 저림은 삶의 반대편을 잠시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곧 어느 시간대에도 속하지 않는 창공의 시간 속을 유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나를 싣고 날아가는 비행기야 말로 내 꿈의 날개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공항으로 간다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집안일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지고 나는 트렁크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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