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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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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24. 2020

변화의 물결에 흔들리는 나의 삶ㆍ

커다란 레미콘이 땅을 울리며 지나간다. 골목에 세워둔 차를 치워달라고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는 인부들. 누군가 연락처도 적어두지 않은 채 골목길에 차를 주차해 놓았나 보다. 세워 둔 레미콘 뒤로 줄줄이 서있는 차동차들이 빵빵거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어디선가 ''조용히 좀 하고 살자''며 냅다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


참 조용했던 동네였다. 한낮의 골목길에는 길고양이가 졸고 있고  까치들이 제 구역을 지키며 한가롭게 울던 도심 속 전원풍경. 그곳이 바로 우리 동네였다.


 요즘 우리 동네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커피숍 하나 없는 동네였다. 해만 지면 인적이 뜸한 이 동네에 장사가 될 리 만무하기 때문에 상가는 아예  들어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서울에서도 옛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동네로 남아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주택들이 즐비한 이 곳은 은퇴한 부부가 살고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집 중에는 가끔 드라마 촬영장이 되어 배우들의 실물을 공짜로 구경하는 기회를 가질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간혹 입춘을 맞이 하여 대문에 커다랗게 복 福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놓아 복이 집안으로 쏟아지게 한다는 중국인이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크리스마스에는 정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트리를 장식하여 새해까지 불을 밝히고 핼러윈데이에는 현관 앞에 진홍색 호박 도깨비와 핼러윈 마녀 인형으로 장식을 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사는 글로벌한 동네이기도 하다.


                             핼러윈 데이 대문과 현관 장식들



50년 전. 나는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서울구경을 왔다. 그 시절 신촌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언니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친구의 언니가 사는 곳이 바로 지금의 우리 동네였다.  

그 날 부러움으로 바라본 집들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구의 언니 집조차) 그대로 있다.


2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기로 정하면서 가장 크게 내 마음을 차지한 것도 그때 본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었다. 이사오던 날은  꿈의 반쪽을 이룬 것 같았다.


주변 있는 이웃 동네는 재건축이 되어 마천루처럼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오히려 서울 도심 속에 있는 이곳은 단아한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동네 초입에 들어서면서부터 따뜻하고 정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큰 길가에 인접한 주택들은 모두 개조되어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둔갑하고 상업시설은 점점 동네 안까지 잠식되고 있다. 대로변의 한 블록은 이미 상가가 형성되었으며 나머지도 천천히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집주인들이 정성 들여 가꾼 뜰이 파헤쳐지면서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곳에 건물이 들어서는 걸 보면서는 집이 망가지는 것처럼 안타까웠다.

가까운 옆동네가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우리 지역으로 변화의 물결이 다가서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거의 매일 친구의 정원에서는 브런치 모임이 있었다. 가족들이 학교나 직장으로 떠난 뒤 느긋하게 모이는 우리들만의 시간이었다.

봄에는 정원에 심은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먹고 가을에는 감나무 아래에서 홍시를 디저트로 먹으며 사철 변하는 뜨락의 모습처럼 우리도 그렇게 늙어갈 줄 알았다.

어느 날 시가보다 더 쳐 주겠다고 하는 부동산 업자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던 친구 부부는 이내 이사를 결심했다.

얼마 후 우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던 친구의 집은 럭셔리한 카페로 변해버렸다.


누군가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 뭉개졌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착잡하다. 어느 한 귀퉁이 친근한 곳이 없을까 찾아보지만 차가운 시멘트와 백색 타일이 자꾸만 밀어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옛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구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은 내가 그동안 다니던 헬스장이 문을 닫았다.

건물주가 자신의 상가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여 새로운 업주에게 새를 들인다고 한다. 그동안 운동을 핑계 삼아 이곳에 오면동네 사랑방처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소식을 이어가던 곳이었는데 모두들 아쉬운 얼굴로 헤어졌다.


누군가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반기는 반면 누군가는 옛 것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 동네 초입에 있던 구멍가게가 어느 날 커다란 마켓으로 바뀌었을 때도 나는 별로 신나지 않았다.

**마켓이라는 커다란 형광판이 24시간 골목을 밝혀주고 있지만 '형제상회'라고 쓴 낡은 간판과 그 앞 평상에서 하루를 소일하던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어진 것이 더 안돼 보였다.


우리 동네 스케치, 그 사이에  사라진 곳이 있다.


내가 취미로 그림을 배울 때, 여행스케치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 오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 동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모습이 사진 속. 아니 내가 그린 그림 속에만 남아있다.

변화의 속도에도 가속이 붙어 요즘에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연희동 김 작가'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한치도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이곳에서 살면서 내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내가 이방인이 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웃들이 떠나가고 나면 새로 이사를 온 사람들은 집을 헐어내고 새로 짓는다. 골목 넓어지고 울타리 사이로 예쁘게 꾸민 집이 훤히 보이지만 이웃간의 정은 더 높은 담장으로 둘려져 있다.


우리 집 우체통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명함이 꽂혀있다.

'집 매매상담'

아직은 떠날 생각이 없지만 저 불빛 환한 상가가 우리 집 발치까지 온다면 어쩌면  나도 성북동 비둘기처럼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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