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Nov 05. 2021

고구마 같은  사랑

남편이 고구마를 캐러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언제 어디에 있는 누구네 고구마밭이냐고 묻는 게 순서인데  선뜻 그러겠다고 승낙부터 했다.

유난히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나는 누구네 고구마밭이든 수확의 결실을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남편 친구가 가꾸는 텃밭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부인도 나처럼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지라 한 동네에 사는 지인이 한두렁 뚝 떼어주며 취미 삼아 농작물을  길러보라고 했다 한다. 성품이 고운 사람들은 때아닌 곳에서 상을 받기도 한다.


친구 부부는 그곳에 배추와 고추, 상추를 심었 나머지 고랑에는 고구마를 심어봤다고 한다.

첫 농사를 짓는 사람 같지 않게 배추 포기가 푸짐했다.


옥상텃밭에서 채소를 가꿔 본 경험이 있는 나는 그까짓 고구마 캐기 쯤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다. 호미로 흙을 파고 줄기를 잡아당기면 자줏빛 고구마들이 흥부네 박에서 보물 나오듯 줄줄이 엮여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선 흙이 차지다.

남편들이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괭이로 힘들게 흙을 파내 주면 두 아낙이 호미로 주변을 헤치고 고구마를 캐내야 하는데 고구마 한 개를 상처 없이 온전히 캐기가 힘들었다.

땅 속 깊이 박힌 자줏빛 고구마가 보이면 환호성이 먼저 터져 나온다. 그럴 때는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설렌다.

가끔은 팔뚝만큼 커다란 고구마가 나오는가 하면 아직 덜 자란듯한 아기 고구마들도 적지 않았다.

어쩌다가 뿌리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고구마는 한차례 우리들과 사진을 함께 찍어주는 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구마 줄기를 들고 농사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푸짐하게 딸려오는 고구마 줄기


고구마는 한때 가난한 서민들의 구황작물이었다.

지금은 종자가 개량되어 속이 샛노란 노랑고구마가 있는가 하면 속까지 온통 가지 색깔인 자주 고구마, 식으면 진득한 꿀물이 떨어지는 꿀고구마 등, 취향대로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거의 포슬포슬한 밤 고구마와 질떡한 물고구마가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 밥을 지으실 때 쌀과 보리 위에 고구마를 썰어 얹은 고구마밥을 지어 주셨는데 맛보다는 양을 늘리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때의 고구마 밥맛은 별로 생각나지 않지만 추운 겨울에 뜨끈한 아랫목에서 깎아먹었던 시원한 고구마 맛은 아직도 생각난다.

가끔 시골에 사는 친구들이 학교에 올 때 고구마를 싸오기도 했다. 아마 그 고구마는 친구의 점심 도시락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동이 나버리는 친구의 한 끼 식사, 그때의 고구마 맛 만은 지금도 기억한다.

참 아련하면서도 슬픈 옛이야기다.


올 가을만 해도 우리집에 고구마 선물이 제법 들어왔다. 은퇴한 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는 동서네가 해마다 보내주는 황토 고구마와 딸네 시댁에서 보내준 충청도 고구마, 올 해는 아래층에 사는 딸처럼 살가운 아가씨가 아버지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것이라며 잘생긴 강원도 고구마를 가져왔다.

제각각 다른 경작지에서 자란 고구마는 그 맛도 조금씩 달랐다. 사람도 지방색이 있는 것처럼 농작물도 풍토에 따라 품는 맛이 달랐다. 하지만 선물 받은 고구마를 다용도실 한편에 함께 모아 두었더니 이제 그 맛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건 차지고 어느 건 조금 더 달콤할 뿐, 고구마 본연의 맛은 모두 다 같았다.


그다지 넓은 밭이 아니라서 오전 중에 고구마 캐는 일을 다 마쳤다. 파란하늘에 길게 줄지어서 날아가는 철새 무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자신이 지은 농사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친구 부부의 모습, 힘들게 지은 농사지만 아낌없이 나눠주는 손길에서 사랑을 느낀다.

                                            




대통령 후보 선택을 앞두고 정치권이 혼란스럽다. 서로 다 자기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재목이라 한다.

그게 누구든 모든 국민의 마음을 고구마처럼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국민을 배부르게 하고 심은 만큼 거둘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고 지역갈등 없이 서로 어울리며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고구마의 사랑을 닮은 사람,

그런 사람 간절한 시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월의 어느 고운 날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