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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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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07. 2021

술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읽으면 유쾌해지는 글이 있다. 필력 좋은 작가가 거침없이 쓴 글을 읽고 나면 찜질방에서 한 소쿰 땀을 뺀 뒤 시원한 식혜를 들이켠 듯 갈증이 해소되곤 한다.


오늘  내가 읽은 글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글이었는데 술만 마시면 자신의 엄마를 때리고 가구를 부수고 행패를 부리는 외삼촌 이야기였다.


학교 폭력을 주제로 쓰다 보니 어쩌다 자신의 가정사까지 들추게 되었지만 그의 자신감 넘치는 문장력은 결코 부끄러운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체험을 우려낸 글이 더욱 진솔해 보였다.  


그의 글을 읽으며 진한 공감을 느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봤던 우리 외삼촌하고 어쩌면 그리 을까? 순간 나는 이 작가가 혹시 우리 친척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리들의 외삼촌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읍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조신한 외숙모와 함께 사는 우리 막내 외삼촌은 평소에는 숫기도 말수도 없는 숙맥이었다. 하지만 몸속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쩌면 저런 광기를 숨기고 살았을까 할 정도로 부수고 때리고 다치고..., 외삼촌의 몸속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인격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외삼촌의 술 주정은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숨 가쁘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어머니는 왜 꼭 나를 앞장세워 함께 그 난리통인 집으로 가자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에는 고추장이 난장을 치고 엎어진 상머리 앞에서 착하디 착한 외숙모는 훌쩍거리고 있고 외삼촌은 그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저렇게 한꺼번에 에너지를 소비하려고 평소에 그토록 조용했던 것일까, 술이 사람을 취하게도 하지만 미치게도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내 몸이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기 때문이다. 알코올과 내 뇌신경은 상극 중에서도 상극이다. 어쩌다가 술을  모금이라도 마신 날이면  다음 날 심한 두통으로 고생을 하게 되면서 술은 실컷 잘 놀고 나서 친구의 뒷 담화나 하는 못된 친구처럼 내 인생에서 제외시켰다.

음식이든 기호식품이든 몸이 거부하는 원인 중에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정서적 불안과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는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여름, 낮술에 거나하게 취한 외삼촌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 왔다. 다짜고짜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땅에 패대기치더니 어머니에게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는 외삼촌쯤 충분히 저지할 만큼 오빠들도 이 굵었다.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조카들에게 오히려 당할 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빠들 중 누군가 삼촌의 멱살을 잡고 밀쳐냈다.

간 나는 눈 앞에서 벌어진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차마 믿지 못하였다.

빗자루를 거꾸로 든 어머니가 오빠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배운 것 없는 놈" 이라며 삼촌 멱살을 잡은 오빠를 심하게 나무라는 어머니를 보며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리둥절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라고 하는 것도 사람의 얼굴처럼 제각각 다른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표현 또한 그 형태만큼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혈육의 정은 뼈에 사무치고도 남는다.

어머니는 외삼촌의 술주정보다 술에 의존해야만 하는 외삼촌의 삶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외삼촌에게는 예술적 고뇌가 있었던 것 같다.

외삼촌의 사진관에는 돈이 되는 인물 사진보다도 보랏빛으로 신비하게 물든 석양의 풍경이라든지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 더 많이 걸려있었다.


외삼촌의 영혼을 휘어잡고 있는 광폭마저 연민으로 바라보았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어디서나 당당했던 어머니가 가끔 왜소해 보일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외삼촌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술을 싫어한 것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그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살면서 외삼촌의 사진관 구석, 캄캄한 암실처럼 마음이 온통 어두워질 때가 있다.

가벼운 고민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 듯 개운하지만 수다 그 이상의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다. 내 가족 내 혈육으로 인한 고통은 남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삭이기에는 버거운 날, 누군가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을 찾다가 문득 술이 눈에 띄었다.


내 앞에 가득 술을 따라놓고 바라만 보고 있은지 한참이 되었

술이 맑다. 겉과 속이 다른 이 요상한 친구에게 실컷 괴롭힘을 당하면 차라리 마음이 개운할까?


내가 외가를 닮았다면 지독한 사랑의 내림이 있을 것이고 덤으로 가슴속에 담고 있는 울분을 알코올에 적시어 불태우던 외삼촌의 광기도 어쩌면 대물림되었을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노려만 보고 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술이 목젖을 타고 뜨겁게 흐른다. 분명 겉과 속이 다른 놈 맞다.

이전과 달리 게워내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나를 대하는 술이 변했는지 술을 대하는 내가 변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술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쁜 친구로만 여겼는데 내가 담대하게 달려드니까 오히려 제법 위로가 되는 속삭임을 할 줄 안다.


삶은 늘 그렇다.

지금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그리워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삼촌의 술주정을 말리러 엄마 치마폭을 그러쥐고 밤길을 걷던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리워진


너 오늘부터 내 친구 하자

술 참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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