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전원생활을 해 보는 것이다. 지금 그나마 단독주택에 살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어느 시골 마을에 정착했을지도 모른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우리 남편과 내가 먹을 채소를 가꾸며 마당은 딛고 다닐 만큼 디딤돌만 남겨두고 모두 잔디나 꽃을 심고 살고 싶다.
시골살이가 쉬운 줄 아세요? 아무 연고도 없이 꿈만 가지고 왔다가 낭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이유다.
나보다 먼저 서울살이를 마치고 시골로 내려 간 친구는 자신의 집 안마당에 전부 불럭을 깔았다고 한다.
비가 오면 흙이 튀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아서 좋더라며 나의 도시 탈출을 극구 만류한다.
비 오면 땅이 물에 젖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는 게 시골살이의 낭만 아니던가,
아이고 이 사람아 몽롱한 소리 그만해. 비 오는 날 시골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걸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친구가 눈빛으로 제발~이라고 말한다.
젊어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도 나이가 들면 자식들 곁으로 온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아이들이 지척에 살고 가까이에 종합병원이 있으며 더구나 아쉬운 대로 단독주택에서 흙냄새를 맡고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 채우지 못한 곳이 있는 걸 보면 나의 시골살이 꿈은 동물들에게나 있는 귀소본능이 내 안에 있어 몸속의 나침반이 자꾸만 그곳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난 곳은 그다지 시골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이 좋아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작은 시골집에 문패를 거는 날이 온다면 '연어의 꿈'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그곳이 내가 안착할 곳이며 영원히 머무를 곳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가꾸어놓아서 완성된 집에 살기보다 내 손길로 천천히 가꾸어가며 살고 싶다.
여행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살고 싶은 시골집을 살폈다. 너무 외딴집은 외로워,
터가 넓어도 힘들겠지, 그냥 아담한 동네에 작은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어...,
차를 타고 지나치다가 우연히 마음에 맞는 집을 찾았다. 우선 내가 관리하기에 적당히 작은집이었다. 내 키의 높이만 한 토담은 무너져 내리고 있고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기와지붕 위에 잡초가 수북이 자라 있었다. 대문 곁에 심은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가 제멋대로 땅에 구르고 있었다. 무너지고 방치된 것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훅 치고 들어 온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에게 집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집은 오래전부터 비어있는 집이지만 자손들이 와서 살 것도 아니면서 팔 생각이 없는지 도통 내놓지도 않고 마을을 흉가로 만든다고 했다.
이럴 때는 시골에 살다가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계신 자손이 부러웠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두 분의 모습, 힘드시겠지?
남편은 나와 취향이 전혀 다르다. 시골보다 도시가 좋고 단독주택보다 아파트가 좋다고 한다. 이곳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올 때도 공부 싫어하는 아이 학교에 가듯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지금도 어떻게 하든 내 계획을 말려보려고 풀과의 전쟁, 무거운 것만 조금 들어도 아픈 허리, 심지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파충류까지 들먹이며 노력한다. 뭐든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하면 할 수 있다. 살아봐야 알 일을 미리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빠는 아파트에 살지만 집 근처에 땅을 빌려 취미로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오빠가 자신의 텃밭에서 오이를 따줄 테니 가지고 가라고 한다.
장화를 빌려 신고 나도 따라나섰다. 일주일 동안 우리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라 보살피지 못한 텃밭은 풀밭이 되어버렸다. 그새 자란 오이는 노랗게 익어서 노각이 되어있고 동그란 풋호박이 풀숲에 여기저기
숨어있다. 연초록 호박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 이 맛이지 호박. 가지. 오이. 깻잎들을 한 소쿠리 들고 오면서 전원생활의 꿈이 여물어 갔다. 내가 기른 채소들을 도시에 사는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참진드기에 물린 것 같은데요?''
의사 선생님은 아침에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심상치 않은 벌레 사진을 보고 진드기가 맞다고 하셨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내 몸에 붙어있는 까만 씨앗을 발견했다. 무심코 뜯어내다가 식물의 씨앗과는 다른 불쾌한 촉감을 느꼈다. 포도씨앗보다 작은 알갱이를 손으로 눌러보니 이럴 수가..., 그 작은 몸뚱이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피가 터져 나왔다.
지금껏 내가 본 어떤 흡혈 곤충보다 소름이 끼쳤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진드기에 물리면 20퍼센트의 치사율이라는 붉은 글자가 뜬다. 바이러스를 보유한 진드기라면 2주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의 구토와 설사, 감기 증상이라니..., 더구나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 건 코로나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아니지 코로나는 이제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진드기에 물려서 걸리는 중증 열성 혈소판 감성 증후군(SFTF)은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병이었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물린 곳은 심하게 부어오르지는 않았으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철이 일러서 가을에 유행하는 쯔쯔가무시병은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지만 연어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내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내 꿈의 걸림돌 중에 가장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포도 씨앗보다 작은 곤충이 두려워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다니...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 중에 내 마음이 담긴 사진이 있다. 멀리 언덕 아래에서 적당한 터의 밭을 일구고 계신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밀레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