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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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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25. 2021

아보카도 싹이 돋았습니다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나 보다. 매일 아침 과일과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다 보니 과일 껍질 쓰레기가 많이 나오게 된다. 이것들을 음식 쓰레기통이 아닌 고추를 심어 놓은 옥상 텃밭에 묻어두곤 하였다. 과일 껍질은 흙 속에서 잘 분해되어 작물을 싱싱하게 자라게 한다. 그래선지 종류대로 여섯 그루를 심은 우리 집 고추는 올해도 풍년이 들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추를 땄다. 제법 실한 고추가 소쿠리에 한가득 채워졌다. 매운 청양고추는 잘게 썰어서 냉동에 얼려 두었고 기다란 오이 고추는 새콤달콤한 피클을 만들었다. 고춧잎은 삶아서 정갈하게 말려놓았다. 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채소는 잎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게 된다.

이쯤 되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 삼조쯤 되는  같다. 이웃들은 잎도 열매도 실한 우리 집 고추를 보며 타고난 농사꾼이라며 나를 추켜세워준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묻어 둔 것들을 잘 발효시켜 준 흙 덕분이다

과일 껍질 외에 다른 비료를 전혀 주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잘 자라는 걸 보면 흙은 무한한 생명의 보고임에 틀림이 없다.


여름비가 내리고 나서부터 고추 줄기 사이로 알 수 없는 싹들이 여기저기서 돋아났다. 

흙 속에 묻힌 과일과 채소 씨앗들이 를 한 것이다. 흙은 모든 걸 분해하여 형태를 사라지게 만들지만 유독 생명이 있는 것만품어준다. 씨앗은 흙의 도움으로 생명을 지키다가 때가 되면 이렇게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새로 태어난 망과 토마토 새싹 사이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어린 나무가 함께 돋아나고 있었다. 뭘까? 길쭉줄기에 잎이 서로 어긋나게 달린 나무는 그냥 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식물이었다. 

씨앗을 보면 새싹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새싹의 뿌리 쪽 살짝 파보았다. 탁구공처럼 동그란 씨앗이 새싹 끝에 매달려 있었다. 아보카도를 먹고 나서 씨앗을 이곳에 묻어두었더니 싹이 돋은 것이다. 열대지방에서나 자라는 아보카도 나무가 우리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니..., 


아보카도 나무를 처음 본 것은 라오스 여행 중 방비엥의 어느 마을에서였다. 루앙 프루방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차멀미를 심하게 하고 난 뒤라 휴식이 필요했다. 일행은 모두 보트를 타러 강으로 나갔는데 나는 혼자마을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집 앞에 있는 나무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따고 있는 을 보았다. 초록 열매는 아보카도였다. 마치 우리네 감나무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에는 초록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린 사내아이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따서 던져 주면 누이인 듯한 소녀가 주워서 소쿠리에 담았다.

지금처럼 우리 주변에서 아보카도를 흔하게 볼 수 있을 때가 아니라서 나는 윤이나는 초록빛 열매도, 그 열매가 이렇게 커다란 나무에서 열린다는 것도 마냥 신기해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함께 아보카도를 주워 소쿠리 안에 담아주었다. 커다란 소쿠리에 아보카도열매가 금방 가득 찼다.

소녀가 유난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아보카도 몇 알을 나에게 주었다. 여행 중에 아보카도로 요리를 만들어 먹을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녀가 건네주는 초록 열매를 귀하게 받았다.


아보카도를 먹을 때마다 나는 따뜻 미소를 떠올린다. 그런 나무가 우리 집에서 자라나다니,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닌 열 그루 남짓이나 되는 열대 나무다.


갑자기 10월의 기온이 뚝 떨어졌다.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잘 자라고 있는 아보카도 나무가 걱정이 되었다. 우리 집 텃밭에서 싹을 틔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열대 식물인데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얼어 죽지나 않을까 하여 옮겨심기로 했다.

두 개의 화분에 아보카도 나무를 옮겨 심은 뒤 실내로 들여놓았다. 며칠 동안 쳐저 있던 잎들이 다시 기를 찾고 꼿꼿해졌다. 머나먼 열대나라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뿌리를 내렸으니 잘 길러 보라고, 흙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열 그루의 아보카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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