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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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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30. 2021

 이 시간에 머물고 싶다

 

마지막에도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방이 꽁꽁 언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내년에 방영될 드라마를 촬영하는 사람들로 연말의 골목길이 술렁거린다.

카메라 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길을 통제하는 사람, 여기저기 동선에 따라 체크하는 사람들,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가끔 이렇게 길을 막고 촬영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드라마 촬영은 우리 동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동네 앞 도로가에는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현대식 건물과 카페, 레스토랑이 많은 반면 언덕으로 오르는 윗동네는 아직도 70년과 80년대 중산층들이 살았던 담장 높은 집들이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골목 사이로 서민들의 삶을 그려낼 수 있는 옥탑방과 반지하 건물이 있는 빌라나 다가구 주택이 있는 우리 동네는 근 현대사의 도시 모습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서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든, 어느 계층의 드라마를 찍든 잘 어울릴 만한 동네다.


촬영 중인 드라마의  제목이 '서른아홉'이라고 쓰여있다. 왠지 제목에서 묘한 뉘앙스가 풍긴다.


'서른아홉'

혹시 주인공의 나이가 서른아홉 살 아닐까? 나이의 끝자리에 아홉이라는 숫자가 오게 되면 어느 나이를 불문하고 기대감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다. 특히 서른아홉의 나이는 십 대와 이십 대와는 다른 뭔가를 이루워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와 사명감으로 통장의 잔고를 보듯 지난날을 헤아리게 된다. 곧 다가올 40대의 중후함이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청춘이란 대열에서 멀어지는 듯한 삼십 대의 마지막 나이란 점에서 그 어떤 나이보다 아쉬움이 많았다. 적어도 내 나이 서른아홉 살은 그랬다.


 시대를 사는 서른아홉 살은 어떤 아픔을 갖고 있으며 어떤 기대감으로 불혹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될까, 드라마는 이들을 어떻게 그려낼까, 궁금하다.


주인공은 많이 아파하겠지 평범한 사랑이 아닌 힘든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드라마의 시청률은 오르기 마련이니까,


혹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서른아홉의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피해의식이 큰 계층이니까,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나이, 조직의 위아래에서 조여 오는 압력에 뛰쳐 나갈지도 모른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 밀려다니는 서른아홉 살 주인공을 시청자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장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주인공일 수도 있다. 투잡 쓰리잡을 뛰어도 금수저 친구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슬퍼하거나 아니면 이른 은퇴를 한 부모 대신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삶에 허덕이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면..., 이젠 그따위 드라마는 시청자들도 신물이 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좀 더 밝고 신나게 사는 서른아홉 살 주인공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무튼 서른아홉이라는 숫자가 꼭 나이를 나타낸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굳이 나이일거라고 생각하 것은 하룻밤만 지나면 올 해의 마지막 밤이고 제야의 종이 울리면 그 순간 누구나 지금의 나이에 한 살씩의 숫자를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뀌는 사람들은 이 시간이 무척 아쉬울 것이다.


나는 서른 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올해 서른아홉 살이다.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서른아홉'이란 드라마의 제목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아홉이라는 숫자는 늘 그랬다. 채워지지 않는 숫자, 미완성이지만 그래서 좀 더 여유가 있는 숫자, 하지만 한 끗 차이로 세대가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지난 1999년에서 2000년 을 맞이하면서 밀레니엄이라는 숫자에 우리는 세기를 뛰어넘는 듯한 기분을 갖지 않았던가,


오늘 밤은 그런 묘한 기분과는 사뭇 다르다. 서른아홉 살이 청춘과 이별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젊음과 이별하는 느낌이 든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나의 숫자를 배웅하고 나면 낯선 숫자를 가슴에 달고 채워졌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으로 살게 될 것  같다.


39년 전에 아들을 낳고 기뻐했던 젊은 엄마는 이 밤이 지나는 게 두렵다. 마냥 붙잡고 싶은 지금의 내 나이는 아직은 69,99살이다.



브런치 작가님, 그리고 올 한 해도 제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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