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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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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19. 2023

비어둔 자리


이른 아침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양평으로 가는 길이다. 출근길 전철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전철이 도착하고 안에 있는 승객들이 내리는데 만도 한참이 걸렸다. 홍대에서 양평까지 한 시간 사십 분이 소요되는데 어쩌나.. 다리야  네가 오늘 수고 좀 해 줘야겠다.

마음과 달리 눈은 혹시나 앞 역에서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 승객이 없을까 살피고 있다.


그때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횡재라고 생각한 순간 오렌지색  의자의 위엄이 강렬하게 나를 멈추게 했다.


"  자리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 비워두세요"


이렇게 발 디딜 틈이 없는 열차 안에서 빈자리는 초연하게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붐비는 열차를 타고 일터로 떠나는 직장인들, 하루의 시작을 힘들게 시작하지만 질서와 칙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선진국민의 면모를 본다. 이럴 국뽕이 차오른다고 한다지 아마,


예전에 첫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겪었던 일이다.


아직 외관상 배는 불러오지 않았지만 나는 입덧을 심하게 하는 임신 초기의 임산부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침 내가 버스에 탔을 때는 좌석이 군데군데 비어있었지만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면서 좌석은 대부분 만석이 되었다. 버스가 국립현충원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누가 봐도 차림새가 현충원 참배가 아닌 관광차 온 사람들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느 지방의 단체에서 관광을 하러 오지 않았나 싶었다. 그때 이들의 인솔자인  한 사람이 내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자리 좀 양보하시죠"


어르신이기는 하나 자리를 양보할 만큼의 연세는 아닌듯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젊은 나는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나뿐 아니라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니며 좌석을 양보하게 하며 자신의 일행 모두를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양보가 아니라 떠밀려 일어선 것 같은 심정이 드는 건 왜일까, 버스 손잡이에  몸을 맡기고 서서 앉아있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는 듯이 으쓱해하는 그를 일행들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보좌관님 애쓰시네요"


보좌관이란 직함으로 불리는 걸 보니 아마 정치 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지역주민들을 모시고 관광을 시켜주려거든 관광차를 대절하던지 할 일이지 시내버스 좌석에 앉은 승객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울게 뭐람


사십 년이 넘은 지금 까지도 겨우 좌석하나 양보해 준 일을 가지고 못 마땅해하는 건 내가 결코 옹졸해서가 아니다. 어떤 강요에 눌려 스스로 작은  권리를 포기하고 불편해야 했던 내가 바보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허세에 동조한 꼴이 되어버린 게 한심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복잡한 전철 안에서의 빈자리는 많은 의미가 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의 규정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는 게 바람직하다.

회기역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내리고 내린 만큼의 사람들이 또다시 탔다.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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