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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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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25. 2023

 다행이다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에서 내려와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밀치듯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집에서 겨우 백 미터쯤이나 왔을까? 골목길에 지나가는 행인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헬스장에 가려던 참이었으니 팔다리를 드러 낸 얇은 운동복 차림새였다. 헬멧을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손목과 얼굴, 그리고 허벅지가 욱신거린다. 어쩜 좋으냐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다. 오른쪽 볼이 파랗게 멍이 들었다. 허벅지와 정강이는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때에서야 참았던 눈물이 났다.


상처를 보고 놀란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일주일 전에도 넘어져서 오시지 않았어요?"


나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이다,


주일 전 탁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이곳 병원에 온 적이 있었다. 이번 사고에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때 입은 손목 부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왼쪽 손목이 시큰하여 자전거 브레이크를 쥐는 힘이 오른손보다 약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확인하던 의사 선생님이 "운이 좋으시네요"라고  한다.

 

땅바닥에 쏠려 허벅지에 생긴 멍과 상처로 봐서는 뼈에 이상이 없다는 게 운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었 보다. 한 달에 두 번씩이나 넘어져서 병원에 왔는데 두 번 다  뼈에 이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게 운이라면 행운보다는 불운에 가까운  아닌가?


운과 운도 짝을 지어 다니나 보다. 언덕에서 내가 넘어진 게 불운이라면 순간 뒤따라 오던 행운이 나를 붙잡아 준  아닐까?


"참 다행이네요"


이 말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행'이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아주 나쁘지 않은 상황일 때 하는 위로의 말이다.  


그래, 나에게는 다행히 있었지, 지금 불운에 굴복하여 좌절하고 있다면 혹시 어느 한 귀퉁이 행운숨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갑자기 환자가 되어 입원했지만 병의 원인을 찾아 고쳤으니 다행이고 길에서 넘어졌지만 보는 이들이 없어서 부끄럽지 않아 다행이었다. 두 번씩이나 연달아 넘어졌어도 뼈에 금이 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 모든 상황이 나를 주저앉히려는 불운이라고 푸념할 때 그만하길 다행이야 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다"라고 주문처럼 외워보면 불운 속에 가려져 있던 행운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긍정의 힘, 그것은 따뜻한 과육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씨앗이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다행'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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