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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28. 2024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책은 돈을 주고 사는 맛'

 딸아이가 학생이 된 손녀와 함께 서점에서 책 사 왔다. 그중 몇 권은 우리 집 서재에도 꽂혀있는 책이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서 구입을 하면 독서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서점에서 샀을 때 완독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버리기 아까워서 혀둔 들을 누군가가 대물림해주기를 바라는 건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집안에 두고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 중, 책과 피아노는 퇴출 1순위다. 이제 이들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 한때는 나의 자랑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무력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피아노는 작고 아담한 사이즈지만 그 전의 피아노는 크기는 물론 무겁기도 해서 이사를 할 때면 웃돈을 더 얹어줘 했다 그런데도 이삿짐 목록에 빠트리지 않고 옮겨왔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집안에 피아노가 있는 집들이 많았다. 유행처럼 번진 피아노 교습의 열풍에 휘말려 회사원의 한 달 월급을 훨씬 웃도는 가격을 주고  피아노를  사들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이를 핑계 댄 엄마들의 허세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열풍은 지나고 나면 한낮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지금  나의  아이들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진로를 택하였고  피아노는 거추장스러운 짐 덩어리가 되어 아직도 집안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는 법,  우선 방안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간직해 두고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지만 막상 정리를 하려고 보니  서운한 감정이 든다.


책을 분류했다. 아이들이 볼 만한 동화책과 역사책은 주변에 초등학생이 있음 직한 지인에게 연락해서 골라가라고 했다. 내 손길이 닿은 귀한 것들인데 함부로 내다 버리기는 정말 싫었다. 전집류는 무료 나눔으로 당근에 올려두었더니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들보다 내가 더 감사하였다.


 알*딘이라는 곳에서 책을 매입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의 앱을 다운로드하여 원하는 규정대로 책을 골라 놓았다. 오래되어 낡은 책이나 시장에 많이 보급되어 있는 책은 매입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직원은 가져간 책을  꼼꼼히 점검하더니 정산된 책값을 계산해 주었.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한 때 소중했던 내 책들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읽힌다는 게 다행이. 이렇게라도 또 다른 주인을 찾아서 보내 주는 게 내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비움의 공간에서 허전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두드려본다. 아직도 이렇게 영롱한 소리가 나는 데... 아무래도 피아노는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다.


오래전 아이들의 피아노 교습선생님에게 재즈 아노의 기초를 조금 배운 적이 있었다. 서툴지만 쉬운 악보 정도는 지금도 칠 수 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제부터 매일 한 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자. 나도 피아노도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힘들겠지만 괜찮을 거야 '즉흥환상곡'을 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한곡쯤 완주해 보는 거지 뭐... 우리의 계획을 한번 멋지게 완성해 보자.


내가 왜 진즉에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지금껏 아이들을 위한 피아노였는데 이제는 나를 위한 피아노가 되었다.


이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기자  피아노를  처음 집에 들여놨을 때처럼 가슴이 설렌


알라딘에서 새 주인을 찾게 될 나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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