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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04. 2024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구월  아침

새벽에 약간의 소슬함을 느꼈습니다. 발치에 던져둔 차렵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참으로 오랜만에 늦잠을 자도 좋겠다는 느긋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켜 둔 선풍기를 끄려면 일어나야 하지만 정작 내 잠을 깨운 건 모기장 사이를 헤집고 비추는 햇빛이었습니다.

참 지독하게도 더운 날이었다는 걸 창 밖 풍경이 말해 줍니다. 노랗게 말라버린 오이잎이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버릴 것 같군요 오늘은 저 잎을 따줘야겠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단에 물 주기입니다. 최근의 무더위에는 하루에 두세 번 물을 준 적도 있습니다. 축 늘어진 꽃잎들의 얼굴 위에 샤워를 해 주면서 등줄기가 시원 해짐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사랑도 도가 지나치면 안 되나 봅니다. 고온다습에 약한 꽃의 뿌리가 물러지는 모습이 간간이 보입니다. 스스로 견뎌 낼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했다는 걸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언젠가 어떤 농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하늘이 반 내가 반 가부시키 하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가부시키'라는 일본어가 우리말로 '각자부담'이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 투박한 농부의 깊이 있는 표현이  감동스러웠답니다.


농사뿐 아니라 작은 꽃 한 송이를 키우는데도 각자의 몫이 있다는군요. 내가 해야 할 몫만 했더라면 이렇게 꽃잎이 짓무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나의 꽃들은 패잔병처럼 쓰러져 버렸습니다. 올봄에 바이올렛 꽃잎을 따서  잎꽂이를 하여 옹기종기 화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놈들이 잘 자라서 어미처럼 보랏색 꽃을 피우면 지인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할 요량이었답니다. 그런데 햇빛이 내리쬐는 썬룸 안에서 꽃들은 누렇게 잎이 뜨고 말았군요 그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곳은 옥상테라스입니다. 차양막하나 없이 직사광선을 오롯이 쬐고 있는 그곳에 꽃들이 있습니다. 여름 한 낮, 옥상 테라스 위에 둔 질항아리들은 다시 가마에서 구워지는 것처럼 온몸이 뜨거웠지만  자신들이 품고 있는 꽃들은 무른 것 하나 없이 건실하였답니다. 나는 질그릇만도 못하였던가 봅니다.


 

풀 벌레 소리가 제법 소란스러워진 아침입니다.

오이의 마른 잎을 잘라 주려다 보니 줄기 끝에 아기 오이한 개 매달려 있습니다. 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었군요 물기라곤 없을 것 같은 마른 줄기 끝에서 노란 꽃을 물고 있는 고추만큼 작은 오이,  새 생명에게 수분을 전해주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지...  이 아침에 나는 자연에서 위대한 모성애를 발견했답니다.


올여름은 무더위에 유난히 투정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또 이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왠 카톡이 그리 자주 울릴까요?  


"기쁜 구월입니다.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구월 맞이하세요"


단체카톡에서 구월의 인사가 오고 가는 중입니다.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이런 인사는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모두들 지루한 장마와 더위에서 헤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던가 봅니다.


고난이겨내고 맞는 계절은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굿모닝... 구월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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