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ug 21. 2024

사과를 따는 사람들

이곳은 전라도 무주 산동네,  지금도 밤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는 청정한 시골 마을이다. 사과나무 산지이기도 한  이곳은 줄지어 서 있는 사과나무에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 모습이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작년에는 과일나무에  꽃이 필 때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나무들이 냉해를 입었었다. 까맣게 타버린 잎을 매달고 있는 사과나무를 보며 안타까웠었는데 올 추석에는 과일이 풍성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특보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섭씨 36도까지 상승된  기온, 체감온도는 그보다 높을 테니 열대야를 넘어선 초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위력에 밀려  이웃나라로 진로를 바꿨다는  태풍이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다. 이토록 지독한 더위는 언제쯤이나 고개를 숙일까, 숨이 턱턱 막힌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남편 친구 부부들과  함께 시골 본가가 있는 친구의 집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곳은 한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서 늘  긴소매 옷을 챙기곤 하였는데  올여름 더위는  깊은 산동네조차 점령해 버렸다.  한낮에는 그늘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지금한창 사과를 수확할 시기라고 한. 한낮의 더위는 불가마와도 같은데 이렇게 뜨거운  아래에서 사과를 따는 사람들이 있다. 사과를 따는 게 아니라 불덩이를 따는 느낌이 들 텐데도....


그들은 거의가 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더위에 익숙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일까, 이깟  더위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열심히 일을 한다.


시골풍경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새벽이면  일꾼들을 실어 나르는 소형트럭들이 마을로 들어온다. 트럭의 짐칸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도시락을 허리에 찬 여자들과 눈이 유난히 크고 순해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타고 있다. 여자들이 머리에 갈대로 엮은 농을 쓰고 있는 걸로 봐서 아마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인 듯하다

저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얼마나 까,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애니깽'이 떠올랐다, 멕시코에서 용설란을 자르며 돈을 벌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였. 노예처럼 일하는 모습도 애처로웠지만 가장 힘겨워보이는 것은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날씨도 그예 못지않게 무더운 날씨다.


주로 동남아에서 온 이들은 체류기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되돌아갈 것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그들에게 날씨 따위를 신경 쓰는 건 호사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무더위 속에서 사과를 따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게 짠했다. 아마 수년 전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휴가기간 동안 바라본 농촌의 모습이 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았다. 고랭지에 김장 배추를 심는 일도 넓은 밭에서 고추와 사과를 따는 일도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이제 '두레'나 '품앗이 '같은 우리말이 농촌에서는 필요 없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먹을 점심 도시락을 직접 챙겨 오기 때문에 농사철의 특식인  '참'도 시대와 함께 사라지는 무형의 것이 되어버렸다


'식비제공 일당 12만 원 지급'


국수 한 그릇에 1500 윈 하는 그들  나라의 돈으로 환산하면 꽤  많은 돈이다. 더위를 무릅쓰고 일하는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다. 사과 한 알에는 비타민과 함께 동남아에서 온 어느 가장의 희망과 꿈이 들어있음을 알았

이전 27화 너희들의 축제는 지금부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