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움직인다
D+6
남편의 발끝이 조금 움직였다. 저 미세한 동작이 거대한 우주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가락이 움직인다는 건 면역 디아블로주사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여보 좀 더, 좀 더 힘을 내봐"
환자인 남편과 모든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원래 남편은 이성적이고 판단력이 빨랐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극복할 수 있는 의지도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에게 자신의 병에 대하여 알 권리를 주기로 했다. 병명을 이야기해 주고 치료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특히나 길랑바레는 환자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회복의 경과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오늘 아침 담당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크게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의사 선생님들의 담화이지만 대략
앞으로의 치료를 눈여겨보자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D+7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오늘로 일주일째, 면역 디아블로주사 다섯 대를 마지막으로 맞았다. 다리의 움직임이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입을 우물거리지만 소통이 안된다. 얼마나 답답할까
아직도 염증치수는 높다.. 폐렴이 빨리 낫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단 20분의 면회 시간, 그 시간에 어찌 됐던 남편의 굳은 몸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마사지를 해 준다.
다리를 폈다가 오므려 주고 발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자극을 준다. 손의 악력이 없어서 병뚜껑을 열 때마다 남편을 부르던 나였는데 최선을 다 해본다
간호사가 오늘은 환자의 표정이 편해 보인다고 한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부탁. 또 부탁을 했다.
* 발목의 움직임이 어제보다 미세하게 더 좋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