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그녀가 불평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자신의 집을 처분하고 단독주택의 반지하로 이사를 했지만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전기료와 가스비가 절약된다며 형편에 맞는 집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원래 심성이 고운 건지.. 신앙심이 유난히 깊었던 건지... 어쩌면 둘 다 가지고 있는 무한 긍정녀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사를 갔다. 우리 동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서 이젠 자주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일요일, 성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동안 가까이 지낸 교우들께 마지막 인사를 하러 들렀다고 한다.
" 새로 이사 간 곳은 어때요? "
"햇빛이 너무나 잘 들어서 좋아요 요즘 빨래를 널 때마다 콧노래를 불러요"
지난 5년 동안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 살면서 얼마나 햇빛이 그리웠을까, 그런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살더니 햇빛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더니만 좋아 죽겠다고 한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빨래처럼 보송보송하게 만들어 주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이웃 자매님의 모습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의 실체를 보는 듯하였다.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 건강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지도 벌써 8개월째 접어든다. 그동안의 삶은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듯 막막하였지만 조금씩 회복이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든다.
누구도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이 자율신경 환자인 남편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맨 처음 손가락을 까딱거렸을 때부터 스스로 침을 삼킬 수 있게 되었을 때, 손바닥을 뒤집고 그 손을 높이 쳐들었을 때, 이 모든 일들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사실 남들에게는 쉽게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하지만 정작 나 자신과 가족에게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모든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감사하는 이웃집 자매님의 초긍정적 마인드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편이 건강을 잃고 나서야 평소에 베푼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라도 내가 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열 배. 백배로 갚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작정이다. 부부는 함께 살면서 서로 바라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의 어느 학자가 행복에 대하여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며 풍요로울 때보다 불행한 일을 닥쳤을 때 맞이하는 자세가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글이었다. 글에서 힘을 얻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불행과 행복은 물과 기름이 아니라 어쩌면 고소한 씨앗을 품은 쓴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병원 근처에 있는 투표소에서 21대 대통령을 뽑는 사전투표를 했다.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투표장으로 가면서 남편은 마냥 행복해하였다. 한 달 전만 하여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서 식사를 하였는데 스스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모든 게 감사하고 더불어 행복하다.
처음 '슬기로운 간병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이 글을 읽어주는 날이 과연 올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바로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남편은 이제 핸드폰으로 문자를 읽고 스스로 댓글을 달 수도 있다. 남편이 눌러 준 라이킷을 보면서 첫 번째 독자의 귀환을 무던히 감사하였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던 지난날들에 비해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남편은 일어서고 걷는 일이 힘들다. 하지만 전처럼 불행하지는 않다. 나 혼자서가 아닌 가족들, 친지와 혈육, 내가 아는 지인 모두가 함께 염려하고 걱정하며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편의 간병생활은 앞으로도 언제 마무리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슬기롭게 대처하고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고 싶다.
지금까지 브런치를 통해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 들, 함께 기도하며 댓글로 용기를 주신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에게 햇빛과도 같은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