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하얀 운동화를 사 왔다.
하얀색은 예쁘긴 한데 쉽게 얼룩이
져서...
고맙다는 말보다 기쁘다는 말보다 주책없이 먼저 나온 말.
아들아 여자어(語)가 있듯이 엄마어(語)도 있단다.
(아까워서 함부로 신고 다니지 못하겠다)는 뜻....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지. 운동회 날 우리는 마스게임을 했어 전날, 선생님께서는 모두들 하얀색 운동화를 준비해서 신으라고 했지, 너의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하얀 운동화를 샀단다. 그날 밤 나는 그 운동화를 끌어안고 잤던 거 같아,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운동화가 변해버렸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몰랐지 뭐야, 누군가 내 운동화에 낙서를 해 놨더군. 하얀 운동화의 뽀얀 발등에 까만색 사인펜으로 내 이름을 커다랗게 적어 놓은 거야 누가 봐도 이 신발은 하얀 운동화가 아닌 내 이름으로 모자이크 된 얼룩무늬 운동화가 되어 버렸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
그 시절에는 남의 신발을 훔쳐가거나 헌신발과 새 신발을 바꿔치기 해가는 일들이 많았거든,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 한 거야. 신발에 내 이름을 쓴 사람은 한 살 터울인 오빠였어 어머니가 시켜서 썼다고는 하지만 나는 왠지 사사건건 일러바치는 얄미운 동생에 대한 복수심 같은 게 느껴졌지.
내 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진 운동화는 잃어버리지도 누군가 훔쳐가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건 얼마나 뚜렷한 각인인지,
그 후로 나는 하얀색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하얀 티셔쓰는 목에 얼룩이 묻을까 봐 피하고
흰색 운동화는 더구나 한 번도 신어 본 적이 없단다.
그뿐만이 아니야. 옷이나 가방에 브랜드의 로고가 커다랗게 쓰여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어
요즘 주말마다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가면서 편안한 복장으로 다녔는데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던 게지
어느 날, 나의 발치수를 물어보던 너,
여태껏 엄마 발 사이즈를 몰랐냐고 엉뚱하게 대답했지만 그 역시 고마움에 선뜻 대답 못하는 엄마語란다.
어제 아빠와의 첫 외출에 동행하면서 네가 사 준
운동화를 신었지. 아빠가 그러시더라
"새 신발을 신었으니 신고식을 해야지, 내가 밟아줄까?"라고,
요즘엔 사라졌지만 우리가 청춘이었던 시절에는 누군가 새 신발을 신고 오면 짓밟아 주는 짖꿎은 장난이 있었어, 아직 두 발을 딛고 일어설 수조차 없는 아빠로서는 최고의 죠크였지만 난 밝아진 아빠의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단다.
이 나이에도 도전하는 게 있구나. 지금껏 이런저런 이유로 멀리했던 것들과 친해지기로 했어, 음식점에서 혼자 밥시켜 먹기, 대중탕에서 옆 사람에게 '등좀 밀어주세요'라고 먼저 말 걸기, 이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쌓은 나만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단다,
오늘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 거침없이 산책을 하였더란다. 좀 더러워지면 어때,
가끔은 고운 얼굴에 검댕이도 묻히며 사는 게 인생 아니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