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tina Sarah Mina Nov 03. 2020

한국에서 곱슬머리로 사는 것

나로 살아가기

어렸을 적에는 직모 머리로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미용실에서 했던 매직이었는지, 타고난 모발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미용 자격증이 있던 엄마 덕분에 유년시절 앨범을 보면 내 헤어스타일은 꽤나 다양한 시도를 많이 겪었던듯싶다.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부터 90년 대생이 갑자기 70년대로 돌아가게끔 만들어주었던 스타일까지.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본격적으로 곱슬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곱슬머리가 싫어지기 시작한 것이. 왜냐하면 친구들은 모두 찰랑찰랑한 직모 머리였는데, 나만 푸석푸석하고 곱슬한 머리가 마치 영화 <해리포터>의 헤그리드를 연상케 했거든. 미용실에서의 시선도 한몫했던 것 같다. 어딜 가나 특이한 머리 취급을 당했고, 내 머리를 보는 그 특유의 시선이 싫었다.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것뿐인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아주 불편하고 내 머리를 마치 숨겨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사춘기에 진입하고는 더 심해졌다. 강박적으로 6개월에 한 번씩은 미용실에 가서 꼭 매직을 했다. 곱슬머리는 비 오고 습한 날에 매우 취약하다. 그런 날에는 온갖 습기가 머리카락에 달라붙어서 축 늘어진 빨래처럼 되기 때문이다. 나는 뜨거운 열 때문에 이마가 데어서 상처 난 줄도 모르고 빨리 머리를 쭉쭉 펴서 가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곱슬머리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세상의 작은 부분을 어여쁘게 바라볼 줄 아는 분이시다. 그러한 시선이 나에게도 닿았던 걸까.


여느 날처럼 곱슬머리인 채로 등교하기가 싫어서 무려 등교 2시간 전에 일어나서 머리를 펴고 있는 딸을 보니 안쓰러우셨던 걸까.



"세상은 저마다 예쁜 구석이 있어.

니 머리를 봐, 예쁘지 않니?

얼마나 개성이 있어?"




머리를 탁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나 스스로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채롭게 염색을 한들. 아무리 다른 사람처럼 스트레이트로 완벽하게 핀다 한들. 내가 타고난 나의 모습을 온전히 사랑해 주지 못하는데 과연 그게 다른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일까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머리를 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곱슬머리가 더 예뻐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컬이 더 풍성하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곱슬머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이제는 모발을 애써 피느라 이마에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이제는 습하고 비 오는 날이 무섭지가 않다.

이제는 내 곱슬머리가 예쁘게 보인다.






놀랍게도 이후로 내 곱슬머리를 함께 좋아해 주는 분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니 다른 사람도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바뀐 것.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진 것.

자신감이 생긴 것.



물론 여전히 한국에서 곱슬머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있다.
가령, 길을 다니다 보면 한 번씩은 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다가와서 "진짜 머리예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중학생 때는 학교 최초로 '곱슬 확인증'이라는 확인증을 발급받아 들고 다녔다. 사실 난 낯가리는 편이라서 이러한 시선들이 불편할 때가 많다.


근데 뭐 어쩌겠어?


타고난 건데.



작가의 이전글 대학으로 인생 리셋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