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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r 12. 2021

구십 더하기 오

깐깐해도 세월은 무시 못해요

내 의사를 당당하게 주장하며 고함치는 95세 어르신은 청양고추 매운맛보다도 더 매운 성격이다. 젊을 때는 불같은 성격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한다. 온몸에서 일산화탄소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은 이미지는 쉽게 접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분이다. 아직까지도 주체 못 할 에너지 여유분으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어르신들의 공통어 “자는 잠에 갔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다” 이미 살만큼 충분히 살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지. 줄 것 다 주고 가시고기가 된 아버지들은 이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 없이 흘러가 조용히 퇴장하는 게 후손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인지. 한 해 두 해 년수를 더하는 만큼 세월이 지루하다는 뜻인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100세 고지를 코앞에 둔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지루함의 연속이기는 하다.


깡마른 체격에 구릿빛 피부가 건강함을 말해주듯 나는 아직 튼튼한 뼈대라고 쪼그려 앉았다 서기를 반복했 그 아버지도 별수 없다. 기름기 빠지고 바람 든 뼈대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가끔은 삐그덕 그리며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침대 난간에 걸터앉는 횟수가 늘었다. “후유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으며 찡긋 웃어 보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만큼 깐깐하고 딴딴한 이미지이지만 웃음을 보일 때면 어린아이 같다. 깡마른 황무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풀꽃이 자라듯이 자세히 보면 예쁘게 보일 때도 있다. 깐깐함 속에도  쉴만한 산소는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어르신의 순수한 웃음을 보면서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풀꽃처럼 알고 보면 청양고추도 그 숨겨진 맛이 있고 매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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