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해도 세월은 무시 못해요
내 의사를 당당하게 주장하며 고함치는 95세 어르신은 청양고추 매운맛보다도 더 매운 성격이다. 젊을 때는 불같은 성격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한다. 온몸에서 일산화탄소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은 이미지는 쉽게 접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분이다. 아직까지도 주체 못 할 에너지 여유분으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어르신들의 공통어 “자는 잠에 갔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다” 이미 살만큼 충분히 살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지. 줄 것 다 주고 가시고기가 된 아버지들은 이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 없이 흘러가 조용히 퇴장하는 게 후손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인지. 한 해 두 해 년수를 더하는 만큼 세월이 지루하다는 뜻인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100세 고지를 코앞에 둔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지루함의 연속이기는 하다.
깡마른 체격에 구릿빛 피부가 건강함을 말해주듯 나는 아직 튼튼한 뼈대라고 쪼그려 앉았다 서기를 반복했던 그 아버지도 별수 없다. 기름기 빠지고 바람 든 뼈대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가끔은 삐그덕 그리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며 침대 난간에 걸터앉는 횟수가 늘었다. “후유” 긴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으며 찡긋 웃어 보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깐깐하고 딴딴한 이미지이지만 웃음을 보일 때면 어린아이 같다. 깡마른 황무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풀꽃이 자라듯이 자세히 보면 예쁘게 보일 때도 있다. 깐깐함 속에도 숨 쉴만한 산소는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어르신의 순수한 웃음을 보면서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풀꽃처럼 알고 보면 청양고추도 그 숨겨진 맛이 있고 매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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