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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Mar 11. 2021

첫차를 기다리는 남자 사람 오빠

날마다 출근할 때가 좋았어

꽃샘바람에 흔들리며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계절이다.

88 상사님은 오늘도 바쁜 아침을 . 본부로 출근하던 그때를 기억해 내고는 출근을 서두르며 점퍼, 바지, 러닝셔츠, 펜티, 양말, 운동화, 슬리퍼, 면도기, 모자, 남은 간식 등등 서랍장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비스듬히 서서 첫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첫차가  시에 오냐고 깡마른 몸에 후들거리는 무릎을 세우며 출근을 서두르는  추억  여행은 쉽게 끝날  같지 않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몸을 지탱하며 배설 처리만이라도 남의  빌리지 않으려고 화장실로 향하던  모습은 가슴 찡하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젊은 시절 얼마나 반듯하고 꼿꼿하게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살아왔을까 알만하.


 그거  줄라고 여기 왔나?  일도 어지간이 없던 모양이다쩟쩟쩟 혀를 차며   안 됐다는 애처로운 마음과 나는 아직  힘으로   있어.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입맛이 없다. 밥알이 모래 씹는  같다.”  한껏 찡그린 얼굴로 밥상을 밀어내는 횟수가 여러 번 반복된다. 날로 멀어져 가는 입맛은 음식 타박에 이것저것 요구사항도 많다. 요구한 대로 평소에 즐겨 드시던 따끈따끈한 추어탕이 기다리는 밥상 앞에서도 떠나버린 입맛을 불러들이기는 힘든 모양이다.


애절한 눈빛으로 배고픔을 호소하며 뱃가죽과 등가죽이 맞닿을  합죽한 배로 버티는 것도 한계를 느낀. 그대로 두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가족들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닿았다. 어르신을 위해서는 유동식을 주입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단맛, 쓴맛, 입맛, 밥맛, 맛과 의미를 논하며 드시던  삶에서는 멀어져야  시간이다.   방울 섞이지 않고 위장으로 직통하는 뉴케어와 연명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위장에 모인 유동식이 얼마나 힘이 되어 줄지는 모르지만 먹는 재미라고는 느낄 수가 다. 옴팍 들어간 눈을 부릅뜨며 “너희들  너무하네, 아침도  주고 점심도  주고 간식도  좋은 거는 저거들끼리   먹고불만이 많다.


밥알   술렁거릴 뿐이었던 위장은 휴업상태를 해제하고 소화를 위해  가동을 시도하지만 주변 장기들은 순순히 응하지 않는 모양이다. 마침내 방광은 뒷짐을 지고 볼록하게 차오르는 배를    외면한다. 얇은 뱃가죽 사이로 가는 실핏줄은  도드라.  터질  같이 얇아진 피부를  뱃가죽이 이렇게 맑은 비닐처럼 되다니 날로 두께를 더해가는  삼겹 뱃살을 잡으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자고 배설하는  당연히 주어진 기본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 치기 쉽다.  기본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어르신을 보면 애처롭다. 자기 관리를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놓아버려야  때가 오면 누구라도 어쩔 수가 없다. 화장실 가고 밥술 들어 올릴 기력만 있어도 농담을 던지며 어르신 아닌 남자 사람 오빠이고 싶어 했던 상사님. 코에는 콧줄을 달고 아래로는 소변 줄을 달고 힘겹게 삶의 마지막 능선을 넘는 이다.  청춘이고 싶었던 상사님의 말년은 굽이굽이 고통의 연속이다.


 누구도 피할  없는 사명 같은  길을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88 상사님은 오늘도 힘겹게 임무 완수 중이다. 추어탕을 밀어낸 코렐 보시기엔 영원히 젊은 오빠이고 싶었던 88 상사님의 얼굴이 왔다 갔다 흔들리며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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