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게 배운다
지난가을에 마음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까지 김장 한 세트다. 배추를 절이고 생강 껍질을 벗기며 다듬다가 핑크빛 뾰족한 끝부분에서 잠시 멈춤. 이 씨눈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한다. 미련 없이 훌훌 잘라 버리면 일의 진도도 빠르고 편할 텐데 기어코 생존에 지장 없을 만큼 살을 붙여 자른다. 싹둑 잘려 나동그라진 그 씨눈을 화분에 묻어 두고 가끔 물을 주며 별 관심 없는 척 들여다본다.
겨울이 다 가기 전 하나 둘 연한 싹이 나왔다. 잘린 생강이 화분에서 순순히 살아나다니. 점점 그 변화과정이 궁금해 빠져든다. 큰 화분 두 곳으로 갈라 심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봄이 그리는 색 위에 여름이 입혀지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집안에서 생강을 키우다니 처음 있는 일이라 정말 생강스럽다.
따스한 햇살에 겨우내 오므렸던 손을 펴며 생강은 빠르게 자란다. 연두색에 봄 햇살이 입혀지니 초록 짙은 여름 댓잎을 닮았다. 뿌리 밑동에서 새로 나온 새싹들이 쑥쑥 자라나 부스럭거리며 댓바람이라도 불 것 같은 생강 숲을 본다. 이러다가 제대로 생강이 달리는 건 아닐까. 비좁은 땅을 걱정하며 은근히 야심 찬 생강을 기대하며 땅속 그 세계가 궁금해진다.
생강이 환경 탓하지 않고 이렇게 쑥쑥 잘 자라는 품종인지를 처음 알았다. 나는 역시 식물은 잘 키운다고 인정하며 혼자 기분이 좋아진다. 씨눈의 끝자락을 잘 잡고 있었던 생강은 생명의 소중함과 그 진가를 보여 주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귀한 생명력으로 푸른 숲을 선물해 주고 있다. 선물이 뿌리내려 또 선물을 준 셈이다.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다. 정말 그렇다.
대나무를 너무 닮아 당연히 까칠할 줄 알고 곁을 지날 때면 까칠한 잎새에 긁길까 봐 거리를 두고 피해 다녔다. 어쩌다 맞닿은 생강 잎은 의외로 부드럽다. 그 성질도 모르고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 것이 미안해 생강 숲 다시 보기. 그 부드러움에 얼굴을 비벼 본다. 염려했던 상처나 긁힘 전혀 없다. 그때 쏴한 바람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사람인가? 겉과 속이 다 까칠한 사람? 겉과 속이 다 부드러운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나도 나를 모르겠어 뭐라고 답해야 돼.
식물도 하나하나 성질이 다르듯이 각자 성격과 기질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됨. 최대한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내 작은 숲을 이루어 무더위에 시원함을 선물하는 생강에게 또 한수 배운다. 맵지만 따뜻한 성질만큼이나 촉촉하고 부드럽던 너에게 한번 더 손이 가고 관심이 간다는 것은 너의 숨은 매력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