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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ug 27. 2022

생강 다시 보기

식물에게 배운다

 

 지난가을에 마음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까지 김장 한 세트다. 배추를 절이고 생강 껍질을 벗기며 다듬다가 핑크빛 뾰족한 끝부분에서 잠시 멈춤. 이 씨눈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한다. 미련 없이 훌훌 잘라 버리면 일의 진도도 빠르고 편할 텐데 기어코 생존에 지장 없을 만큼 살을 붙여 자른다. 싹둑 잘려 나동그라진 그 씨눈을 화분에 묻어 두고 가끔 물을 주며 별 관심 없는 척 들여다본다.


겨울이 다 가기 전 하나 둘 연한 싹이 나왔다. 잘린 생강이 화분에서 순순히 살아나다니. 점점 그 변화과정이 궁금해 빠져든다. 큰 화분 두 곳으로 갈라 심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봄이 그리는 색 위에 여름이 입혀지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집안에서 생강을 키우다니 처음 있는 일이라 정말 생강스럽다.


따스한 햇살에 겨우내 오므렸던 손을 펴며 생강은 빠르게 자란다. 연두색에 봄 햇살이 입혀지니 초록 짙은 여름 댓잎을 닮았다. 뿌리 밑동에서 새로 나온 새싹들이 쑥쑥 자라나 부스럭거리며 댓바람이라도 불 것 같은 생강 숲을 본다. 이러다가 제대로 생강이 달리는 건 아닐까. 비좁은 땅을 걱정하며 은근히 야심 찬 생강을 기대하며 땅속 그 세계가 궁금해진다.


 생강이 환경 탓하지 않고 이렇게 쑥쑥  자라는 품종인지를 처음 알았다. 나는 역시 식물은  키운다고 인정하며 혼자 기분이 좋아진다. 씨눈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던 생강은 생명의 소중함과  진가를 보여 주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귀한 생명력으로 푸른 숲을 선물해 주고 있다. 선물이 뿌리내려  선물을  셈이다.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다. 정말 그렇다.


대나무를 너무 닮아 당연히 까칠할  알고 곁을 지날 때면 까칠한 잎새에   거리를 두고 피해 다녔다. 어쩌다 맞닿은 생강 잎은 의외로 부드럽다.  성질도 모르고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 것이 미안해 생강  다시 보기.   부드러움에 얼굴을 비벼 본다. 염려했던 상처나 긁힘 전혀 없다. 그때 쏴한 바람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사람인가? 겉과 속이  까칠한 사람? 겉과 속이  부드러운 사람?  다르고  다른 사람? 나도 나를 모르겠어 뭐라고 답해야 .


 식물도 하나하나 성질이 다르듯이 각자 성격과 기질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됨. 최대한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내 작은 숲을 이루어 무더위에 시원함을 선물하는 생강에게 또 한수 배운다. 맵지만 따뜻한 성질만큼이나 촉촉하고 부드럽던 너에게 한번 더 손이 가고 관심이 간다는 것은 너의 숨은 매력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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