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뒤돌아 보며

한분 한분 귀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by 수국

브런치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내게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딸내미가 브런치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도 1년이 지났을 때쯤 전 세계는 코로나 공포에 떨었고 외부활동도 모임도 자제하며 갇힌 듯 살아야 하니 내적 외적으로 답답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였고 그때 다시 브런치를 떠올리게 되었다.

작가 신청을 하려면 3편의 글을 보내라고 하는데 보낼까 말까 될까 안될 거야. 오락가락 흔들리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본 그날이 바로 일 년 전 2020년 5월 18일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위해 일어났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당했던 바로 그날! 그 기념일에 국가를 위해 큰일을 계획한 것도 아니고 비록 나를 위한 그 일도 할까 말까 소심의 극치를 달렸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위해 3편의 글을 제출하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을 받고 어쩐지 어색하고 민망했다. 내가 무슨 ‘작가’라니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그 후에도 많이 망설였다. 짜임새 없는 글이지만 한번 발행해 볼까 누를까 말까 누르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뒤를 알 수 없었던 나는 두렵고 떨렸다.


나에게 브런치를 소개해준 딸에게도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브런치에서 띄워주는 여러 글들을 다음을 통해 남편이 읽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브런치란 말에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정신 차려야지 자유롭지 못한 초보의 주눅 든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참에 이실직고하고 자유를 누릴까 말까 어쩌다 생초보 글에 예상외로 수백수천 명 조회수가 정신 못 차리게 막 올라가도 그 이유를 몰라 놀라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띄워 주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알찬 글도 아니었는데 고맙고 감사했다.


언제까지 비밀로 간직할 수가 없어서 6개월이 지난 후에 가족들에게 이야기했고 앞으로 누구의 인생사가 털릴지 모르지만 잘 살았으면 좋은 내용으로 잘 못살았으면 또 그런 내용이 꾸밈없이 털려 나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겁주기도 했다.

”아 상관없다고 맘대로 하라고” 그렇게 허락을 받은 셈이다.


딸내미 말이 “엄마 브런치 작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더라 대단한 사람들도 여러 번 떨어졌다던데” 고로 “엄마는 한 번만에 되었으니 대단한 과정을 통과한 거야.” 용기 내라고 치켜세웠지만 대단한 글 쓸 것도 없는데 부담만 한 가득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일 년을 돌아보면 미약한 초보에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구독을 해주시고 라이킷과 댓글로 힘을 주시는 한분 한분 소중한 분들이 계셔서 일 년을 잘 지내 온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제게 힘이 되어 주신 분들 덕분에 코로나로 답답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띄워주시고 여러 번 기회를 허락하신 브런치팀에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브런치팀에서 신경 써 주신 글들을 모아 봤습니다.

초보니까 이러고 있는 거겠지요.

여기까지 일 년 동안의 과정이었습니다.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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