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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Sep 12. 2023

소소한 정에 힘을 얻는다

퇴근길의 이모저모

퇴근으로 붐비는 시간을 살짝 지나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아 조금 가다 보니 뒷머리에 후끈한 바람이 스친다. 에어컨 바람과는 느낌이 다르다. 계속되는 푸푸 소리와 함께 뒷사람의 한숨바람이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훅 훅 와닿는다. 뒷좌석에 누가 앉았을까? 궁금하지만 돌아보기는 무섭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잘못 결렸다가 묻지 마 귀사대기라도 얻어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불편하고 공포스러운 이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버스 안에는 졸고 있는 사람, 바깥을 바라보며 멍 떼리는 사람, 가는 내내 전화통화만 하는 사람, 폰을 보며 시간 때우는 사람, 한숨만 푹푹 쉬는 사람 제각각이다.


두 정류장 더 갔을 때 버스가 정차하자 몇몇 승객은 내리고 몇 사람은 탄다. “환승입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단말기는 각각 다른 소리를 내며 승객들을 통과시킨다. 마지막 청년의 카드는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두 번 세 번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청년은 그 카드 외에 다른 카드나 현금은 없는지 기사님께 뭐라고 양해를 구하고 민망해하며 중간쯤 와서 선다.


그때 청년 앞에 앉았던 중년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서 “기사님 저 청년 차비 제가 낼게요.” 하고는 카드를 단말기에 갔다 댄다. “하차합니다.” 한번 더 대니 “감사합니다.” 청년 차비는 어머니 한 분이 대신 냈다. 청년은 미안해하며 “송금해 드릴게요.” 하고 아주머니는 “됐어요. 안 받아도 됩니다.” 손사래를 친다.


청년은 폰을 열고 바로 송금하겠다고 계좌를 찍어달라고 어머니 앞으로 폰을 내민다. 그 어머니는 “됐으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 도와주세요. 사람 사는 거 다 그렇지 뭐.” 그 말에 상황정리 끝이다.


청년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니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맨 뒷자리로 가서 앉는다. 지친 하루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죄 없이 공포에 떨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좋은 이웃의 따스한 마음을 보니 흐뭇하다.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유경험자로서 그 청년의 황당했을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늘 사용하던 카드인데도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니 믿을 수 없어서 두 번 세 번 들이댔다. 그래도 같은 말만 나왔다. 충전식이라면 잔액이 부족합니다. 그러겠지만 후불교통카든데 무슨 일이가 싶어 손에 든 카드를 확인한 순간 앗, 이럴 수가! 믿었던 카드가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없는 체크카드라니.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당장 필요한 버스요금을 지출하지 못하는 카드는 소용없었다. 교통카드랑 색깔이 같아서 잘못 쥐었던 것이다. 얼른 카드를 바꿔서 “감사합니다.” 소리를 듣고 뒤쪽으로 들어갔지만  참 민망했다.


요즘은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을 들고 다닐 일이 거의 없다. 젊은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민망한 고비를  넘긴 청년은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것으로 믿는다. 하차하기   앞에 서서 세상 끝난  한숨 쉬던  사람이 누군가 돌아봤다. 세상 둘러 꺼지듯 무차별 한숨 바람을 불었던 그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아저씨다. 기어 구분 지어라면 얼마든지  힘내어 도전할  있는 은 측이.


물가는 오르고 살림살이 나아지는 것도 없고 먹거리도 줄여서 살아야 할 판이지만 그래도 ‘아저씨 힘내세요.’ 한숨 덩이가 덕지덕지 옮겨 붙었을 뒷머리를 털며 마음으로나마 그분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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