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하게 Aug 06. 2017

무엇을 위한 선택인가

커피와의 이별.

몸은 조금 나아졌을지 모르나, 마음은 확실하게 허전해졌다. 몸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냐, 마음을 위한 위험을 무릎쓸것이냐.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커피와 거의 한 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커피와 함께였다. 늘. 대학생때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접했던 기억은 난다. 우유와 시럽이 들어간 달콤한 라테나 휘핑크림까지 듬뿍 올려진 음료들을 주문하는 친구들 옆자리에서 나는 늘 물과 에스프레소만이 섞인 아메리카노를 찾았다. 한창 외모에 예민했던 그 시기에 음료라도 살이 찌지 않는 것으로 마셔야하지 않냐,라는 스스로의 압박이 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던것이 조금씩 아메리카노의 씁쓸하고 깔끔한 맛에 익숙해지고 또 익숙해지다, 물보다도 많이 찾는 음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듯,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무섭다는 습관이.


대학생 시절에는 지하철 역사내에 있는 커피집이나 학교 내에 있는 저렴한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손에 쥔 채 수업에 들어갔다. 그건 아주 당연하고 필수적인 일이었다 나에게. 그러다 용돈이라도 떨어진다치면 집에 사놓은 카누를 두세봉지쯤 쥐고 학교를 가서 함께 챙겨온 텀블러에 모두 털어넣고 그 쓴 맛으로 지루함을 달래곤 했다. 그러고는 하교할 시간 쯤에 또 다시 역사내에 있는 카페에 들러 가장 큰 사이즈의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긴 하교길을 버티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작년 1월 첫 회사에 입사했을때에는 그 빈도수가 더 잦아졌다. 하루를 내내 한 곳에 앉아있어야 하다보니 졸음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임시방편으로 커피를 손에 쥔 채 일하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이러했다.


합격전화를 받고 처음 출근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처음 가는 길목이다보니 일찍 집을 나서기도 했지만 그보다 회사 근처에 나와 맞는 카페를 찾는 일 또한 너무나 중요했던 까닭도 있었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어떤 카페들이 있나 두리번거리며 회사를 찾아 언덕을 올랐고 그 곳에 있던 여러개의 카페를 한번씩은 다 들러본 것 같다. 가격은 어떤지, 사이즈는 몇가지가 있는지 또 맛은 어떤지. 

그러다 알게된 회사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작은 테이크아웃점에 들르게 되었는데 딱이었다. 딱. 가격이며 사이즈며 커피의 맛까지 저렴했고 사이즈도 컸고 신미를 싫어하는 나에게 씁쓸한 그 곳의 커피가 딱이었다. 그 뒤로는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그 커피집으로 향해 커피를 손에 쥐고 회사를 가는 언덕길에 올랐다. 가장 큰 벤티사이즈였지만 그도 몇시간 가지 못했다. 아-그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공복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공복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제일 사랑스럽다. 그러나 몸을 위해 놓아주었을 뿐. 어찌돼었든 이 이야기는 뒤로 밀고, 그 출근길에 사온 벤티사이즈의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점심시간이 오기 전 바닥을 드러낸다. 그러면 점심을 먹고 다같이 회사내에 있던 작은 카페에서 또 다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4시쯤이 되어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혼자 회사내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충전하거나 회사 바로 앞에 위치했던 카페에서 커피를 사온다. 그렇게 기본 3잔을 마신 후에도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캡슐커피로 하루를 달래곤 했다. 이정도로 말하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나의 커피중독성에 대해 알 거라 믿는다. 하지만 커피는 나에게 습관 그 이상의 것이었다는것이 이 글의 포인트이다. 주말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캡슐머신 앞으로 가서는 컵에 얼음을 가득 채워넣고 가장 진한 캡슐로 에스프레소를 내린 후 적당한 양의 찬 물로 함께 만든 아이스아메리카로 아침을 깨우는 그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득 차있었다. 뭐가 가득 찼냐고 묻는다면, 그때 그 순간,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씁쓸한 맛으로 내 입을 거쳐 텅 비어있는 내 뱃속에 가장 먼저 도달하게되는 그 순간. 그 순간 만큼은 아무런 걱정고민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그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던 내가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끊은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년도 6월에 입사를 하고나서부터 커피를 입에 대지 않게됐는데 특별히 입맛이 변했다던가, 주머니를 더 동여매겠다는 그런 부분이 아니라 온전히 내 피부염 때문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물 대신 커피를 마시던 나는 사실 지루성피부염을 앓고있었다. 커피를 달고 살았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기만하면 입이 마르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지독히도 자주 그리고 격하게 느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득찬 순간들을 놓을 수 없었던 마음에 그 얇팍한 동아줄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인데, 입사를 한 후 환경이 바뀌고 생활패턴이 바뀌어버리니 이 지루성피부염이 가면을 벗은채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활보하기 시작했다. 지루성 피부염의 견딜 수 없는 점은 큰 여드름이 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이 온 얼굴을 기어다니는 것같은 미친듯한 간지러움이 찾아오고, 그 간지러움에 손이라도 댔다가는 온통 부어오르기 일수였다. 특히나 나는 양쪽 눈커풀과 이마 그리고 턱쪽이 유독 심했어서 고통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피부과를 찾아가면 때마다 보습크림을 잘 발라주라는 말 뿐이었는데 아무리 보습크림을 발라주어도 경과가 없기를 이년째,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커피를 끊자 다짐을 했다. 


커피를 끊고나니 커피를 마셨던 빈 시간을 모조리 ‘물’로 채우기 시작했다. 심심한 입을 달래려 회사에 있는 시간에만 2리터를 넘게 마셨다. 그렇게 두달을 넘게 지내고 있는데 문득 어제저녁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커피를 끊고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피부염은 커피를 끊고 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건조함이 덜해지면서 그 상태가 호전되긴했다. 커피를 달고 살때 늘 느꼈던 또 하나의  치명타는 속쓰림이었는데 커피를 끊고나니 늘 쓰려오던 속도 한결 단단해진 느낌이다. 거기에 더해 밤마다 늘 찾아오지 않던 잠도 솔솔 잘온다. 새벽에 깨는 일 또한 없다. 이 모든게 커피를 끊은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진 것인지 무엇인지, 커피를 끊은 그 이후부터 이 모든 좋은 점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구? 이렇게 긴 서두(?)를 던지며 하고싶은 이야기는 커피를 마실때 오롯하게 느껴진 그 꽉 차오르던 시간과 나의 공간들이 이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만난 애인과 헤어지기라도 한듯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공간에 갔을때나, 함께 했다면 더 빛났을 시간들이 닥쳐왔을때가 되면 괜시리 아련하게 커피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아-지금 이 순간 커피를 마셨다면 더 완벽했을텐데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아주 가끔 화가 나거나 진정이 되지 않는 순간에 흡연자들이 담배를 찾듯, 나는 커피를 찾는다. 그러면 그 어지러운 감정과 생각들이 한순간 차분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몸은 조금 나아졌을지 모르나, 마음은 확실하게 허전해졌다. 몸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냐, 마음을 위한 위험을 무릎쓸것이냐. 나에게는 지금 이것이 문제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지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