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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Apr 26. 2018

삶이 나를 기다려주는 순간

서둘러 살아가야하는 세상의 공기가 느려지는 그 때.

가끔은 굉장히 가라앉은 내 모습이 좋기도 하다. 그런 순간이 오면 한을 풀듯 엉엉 울고, 그리고나서 바라본 세상은 늘 빨리 서둘러야하는 이 세계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나를 기다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에 맞춰 천천히 한발 한발 춤을추듯, 퐁당퐁당 뛰어다닌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아침에 힘들게 눈을뜨고 두발로 서기힘든 지옥길로 출근을 하고나면 서둘러서둘러 일을 하다가 지친 걸음을 옮긴다. 감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눈을, 또 다시 지쳐 감은 눈을 힘들게 떠야한다. 물론 늘 힘든일들만 가득한건 아니다. 퇴근 후 달콤한 데이트를 할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기도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빠르게 지나간다. 오죽하면 빠르게 흘러가는 주말을 보고 워어어어어어얼호아아아아아수우우우우우우우우우모오오옥금퇼 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찌되었든 핵심은 그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다는것. 그러나 이 세상속에서도 간혹 느린 순간이 찾아오곤한다. 나에게 그런순간은 내가 아주 깊은 웅덩이에 빠지게되는 순간이다.

깊은 웅덩이라함은 내가 굉장하게 우울해지거나 생각이 극도로 많아지는 순간을 말한다. 보통은 좋은일보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떄 생각이 깊어지고 많아지곤하는데 그런 순간들 중 간혹 제5의 세계를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 세상이 느려지는 순간이다.

한달쯤 전 어느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던 날을 기억한다. 결코 부딪히고싶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던 날이다. 해결할 방법을 알지만 실행할 수 없었고 그 갇힌 일상속을 살아야 한다는 답답함에 가장 가까운 사람과 투닥거렸다. 그는 하필 회식이 있어 날 만나러 오기 힘들었고 나는 우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맥주 한병밖에 되지 않는 주량의 패기로 편의점에 들어가 키 큰 맥주 하나를 손에 든채 골목길을 걸어다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까지 괴로운 문제가 생긴걸까. 수 도 없이 되새기며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백예린의 앨범을 재생했다. 백예린의 ‘아주 오래된 기억’이 흘러나왔다. 길 안에서 맴도는 바람과 약간의 취기가 더해지면 더할나위업는 5차원의 세계가 열린다. 아, 깊은 좌절과 많은 생각들도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 우울함을 딛고 일어서려는 나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순간은 ‘시간’이라는 존재가 무의미해진다. 그저 나를 훑고 지나가는 느린 공기와 저 앞의 길을 비추고있는 의젓한 가로등빛을 보며 한발, 한발, 의미없는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는듯 시간의 존재가 무의미해진다. 그러고나면 문득 우울함에 갇혀, 많은 생각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만나지 못했던 작은것들의 소중함이 하나씩 하나씩 생각난다.  

제일 먼저 그 순간 힘든 나를 천천히 기다려줬던 작은 골목길과 그 길을 자그마하게 비추고있던 가로등불빛, 그 가로등에 자물쇠로 묶여있는 자전거가 일렁이며 나를 훑고 지나가는데, 그 순간에 느껴지는 시원하고 느릿한 공기가 문득 소중해진다. 그러고나면 그 느릿한 공기의 흐름에 나의 온 시간들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굉장히 가라앉은 내 모습이 좋기도 하다. 그런 순간이 오면 한을 풀듯 엉엉 울고, 그리고나서 바라본 세상은 늘 빨리 서둘러야하는 이 세계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나를 기다려준다. 그러면 나는 그에 맞춰 천천히 한발 한발 춤을추듯, 퐁당퐁당 뛰어다닌다. 퐁,당,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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