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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Oct 15. 2018

나는 기죽지 않는다.

2년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푹푹 꺼지는 한숨만 내뱉었던 때가. 그리고 정확히 2년이 지나 나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2016년 10월. 정확 이맘때쯤 나는 퇴사를 고민하고있었다. 그 비싸다는 4년제 미대를 졸업하고 그 돈을 받고 일하는게 점점 납득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매달 점심값, 교통비에 몇푼 되지도 않는 커피값을 빼고나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했다. 졸업도 하기전에 취업을 하다니 대단하다고, 돈은 얼마 안되지만 뜻깊은 경험이 될거라고. 월화수는 일이 없어 빈 시간을 메꾸기에 바빴고, 목금은 새벽까지 기자들의 글이 데스크에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짙은 밤을 보내곤했다. 새벽퇴근을 하는 날인 금요일, 인쇄소에 마지막으로 파일을 넘기고 낯설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길, 불이 꺼지지 않는 한강을 보며 가던 그 길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 이 꼭두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이 이렇게나 많구나. 힘들다 투정하면 안되겠구나. 그렇게 월화수는 빈 시간을 채우고 목금은 데스크를 기다리며 10개월을 보내왔다. 쉽지 않았다. 말을  섞을 사람 하나 없던 것도 힘이 들었고, 친구들이 받는 월급에 반밖에 받지 못하는 것 또한 힘들었다. 마지막 대학 6개월의 유예기간을 버려두고 갑작스레 생겨버린  취직자리에, 사회에 몸을 던진것이 사무치게 억울했다.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월급을 받으며 천천히 준비하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태어나 처음 나 스스로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린것이다. 그 어떤 말들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만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퇴사를 했다. 햇살을 받으며 깨는 여유로운 아침이 좋았고, 강아지와 함께 이불을 덮고 있는 느즈막한 시간들이 나를 충전시켰다. 예쁘게 차린 간단한 아침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지난 작업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세우는 시간들이 뜻깊었다. 약 두달정도.


엄마와의 유럽여행도 끝마치고 어느정도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퇴사를 했던 이유는 뒤로한채 어디든 구직을 하기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고, 기어코 꿈과 달랐던 현실에 들어가고말았다. 들어왔다. 개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꼰대란 꼰대들은 죄다 모아놓은 집단이었고 업무처리도 원활하지 않았으며 하나있던 사수이자 팀원은 나를 막대하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바빴다. 1년 반쯤 지났을 때는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느라 5키로나 빠져버렸고 컨펌을 받으러 가는 발걸음에는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사무실 한 층을 넉넉하게 울릴정도였다. 이대론 안된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현실이 낙낙하게 다가왔다. 어김없이 폭언이 뒤따르던 어느 날 퇴근시간에 나는 '야 기분나빠?' 하는 인간적이지 못한 사수의 물음에 '네 기분 나쁜데요'라며 맞대응을 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너같은 사람과 일 못하겠으니 니 성에 차는 사람과 일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아 집으로 나섰다. 속이 시원했다. 나이차이도 고작 2살밖에 안나는 인간 하나가 본인이 이 회사에 1년정도 먼저 몸을 담고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나를 이런식으로 막 대할 권리는 없었다. 부당했고 나는 부당함을 폭로했다. 다음날 언제 퍼졌는지 모르는 나의 일때문인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몇 사원들은 나를 안주거리로 수근대기시작했고, 가해자는 나의 업무와 법인카드를 가져갔다. 경솔한 행동이었고 본인을 무덤으로 직접 파묻었다. 이사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이사는 면담을 받아들였다. 모든 걸 얘기했다. 


나는 아직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것이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빅엿을 먹일 각오로 이를 갈고있다.


이렇게 또 다시 구직이 시작되겠지만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회는 여전히, 여전하구나 하는 한숨과 함께 그래도 달은 나를 응원한다는 깊은 믿음으로 어제밤 나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나는 기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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