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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Sep 29. 2019

삶은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그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잘 이겨내거나 혹은.

너무 늦어 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쉽사리 노트북에 생각을 옮기지 못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 늦어서 이미 감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혹시나 하는 무력감과 두려움에 계속 뒷걸음치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간에 갑작스럽게 글을 적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언젠가 마주해야 할 두려움이라면 기꺼이 지금 당장 하겠다는 작은 마음 한 톨이 전부다.


음.. 사실 일기에 비슷한 이번 글은 그냥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매일 조금씩 늘어나는 구독자분들이 혹여나 느낄 기다림 같은 것에 대한 보답 같은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흐름이 완전하게 바뀌어버린 느낌이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많은 일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 번에 몰려오자 감당할 여유나 받아들일 준비 같은 것을 할 세도 없었다.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려 꾸역꾸역 삼키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힘이 든다. 뭐가 그리 급한지, 너무 많은 것들은 한 번에 나를 파고들었다. 상처도 축복이라는 말을, 인생은 폭풍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출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류시화 작가의 말을 돼 새기며 하루하루를 지나 보내고 있다. 기쁨은 번개처럼 왔다 가고, 슬픔은 태풍처럼 나를 쓸어가려 한다. 들이닥친 많은 변화들이 나를 단단하게 붙잡고 정신없이 흔드는 틈에, 온 힘을 다해 굳센 나무를 끌어안고 버티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잠잠해져 삶이 다시금 평화로워질 테지만 지금 나를 흔드는 이 거나한 비바람이 밉기만 하다. 매운 떡볶이를 먹을 때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고 귀가 먹먹해진다.


생각을 옮기는 것이 너무나 까마득히 오랜만이라 앞뒤도 없고 정신도 재미도 없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시작하려 닫힌듯한 문을 두드리는 나를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정리가 필요하고 이 변화를 잠재울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 변화는 또다시 나를 뒤흔들 것이고 나는 맥없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잘 이겨내거나 혹은 잘 받아들일 것이다. 삶은 그렇지 않은가. 상처투성이여도 그것마저 나의 삶이고, 행복한 순간들이 아주 짧게 머물고 가도 그 순간의 벅참으로 또 먹먹해진 일상을 잘 이겨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생각지 못한 기쁨과 고통과 환희와 불행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것이 우리들 삶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저 변화에 묵묵하게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바람에 쉽게, 맥없이 흔들리지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갈대처럼, 쏟아붓는 비와 거센 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고목나무처럼. 그런 사람이고 싶다.


몇 개월째 나를 떠나지 않는 이 태풍이 잠잠해질 순간이 올 것을 알기에 오늘도 이렇듯 하루를 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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