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하게 Apr 06. 2016

검은 획들의 행진

좋은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별 다른 의미 없이 책을 읽어왔다.

읽고 나서야 재미없다, 재미있다를 나눴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한번 더 볼만한 책과 영영 책장 속에 갇힐 책을 구분 지었다.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있는 책을 나누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재미있는 영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하면 그 내용과 재미가 배로 불어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동의를 구하며 좋은 영화 반열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 확장범위는 확연하게 책과 구분된다.

일단 책은 영화처럼 접하기 쉽지 않다. 구하는 데에 있어서 접하기 쉽지않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는 시간을 내어 2시간에서 3시간을 근처 영화관에 내어주면 되지만, 

책은 그 시간을 예상하기 힘들고 만약 그 시간이 조금 길어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너무나 놓기 쉬운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는 눈 앞에 보여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만 

책은 눈 앞에 보여진 것을 봐야지만, 그제서야 나에게 스민다.


영화는 평균 2시간 전후의 러닝타임 동안 기승전결 있는 스토리와 

그를 잘 보여주기 위한 배우들의 연기, 짜임 있는 연출력과 이를 뒷받침할 재정으로 

그 만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지만, 책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놓여진 한번 두 번의 획들이 모여,

수천수만 번의 검은 획들의 행진들로만 작가의 생각과 의미를 보여줘야 한다. 


좋은 책을 읽었다면 책장을 덮은 그 순간이 다시 시작이다.

작가가 전해준 말들에 귀를 열심히 기울여 내 속에 그 글들을 가득히 담았다면 

책장을 덮은 후에는 그 글들을 끄집어내어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 꽤 마음에 드는 책들은 책장을 덮은 순간 

그 책의 맨 첫장만을 읽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책은 너무나 깊고 넓다.


그에 따라오는 판단은 우리들의 몫이다.

좋은 의미의 책을 찾는다는 것은 아마도 

검은 획들의 행진 속에서 그들이 가리키는 자그마한 화살표를 찾아내는 일이다.

작은 화살표들을 잘 따라가다 보면

점점 큰 의미들로 가득 차 있는 무한한 의미들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꽃이 폈다 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