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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Nov 24. 2016

나는 요즘 넉넉하게 불안하다.

지금도 지나가면 결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될 수 있을까

"엄마 나 속이 너무 안 좋아 어떡해"

대학교에 갓 입학한 후 신입생 환영회를 갔던 날 새벽이었다. 건대입구역에서 일산까지. 집으로 가는 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로서는 경의 중앙선이 이만큼 잘 되어있지도 않았을뿐더러, 3월 새벽의 혹독한 날씨는 처음이라는 설렘으로 가득 찬 채, 얇게 입고 나온 가죽재킷 하나로는 너무나도 벅찼다. 주량도 모른 채 주구장창 술을 밀어 넣고 첫차를 기다리느라 들어갔던 카페에서 한바탕 오바이트를 한 후 눈을 떠보니, 함께 카페에 들어왔던 동기들은 먼지 한 톨 없이 사라진채 나는 낯선 이들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줄만 알았던 카페가 술 취한 이들의 노숙처가 돼버릴 줄이야. 새벽의 건대입구역 카페는 그랬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추운 새벽 거리로 나서 건대입구역으로 갔다. 5시쯤이니 곧 첫차가 오겠지.

아뿔싸. 아니다. 막상 건대입구역에 가니 공간이 막혀있지 않아 바깥의 매서운 새벽바람이 불어 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첫차는 6시쯤이나 돼야 올법했다.

덜덜덜. 하필이면 손끝을 넣을 주머니도 하나 없는 짧은 가죽재킷에 만 19세의 패기로 입은 짧은 원피스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는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선택이라고는 살색 스타킹 대신 검정 스타킹을 신었다는 것.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한번 다 쏟아낸 속이 다시 한번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견딜 수가 없었다. 그 추위와 울렁거림은 내가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 새벽에 주무시고 있을 엄마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그래도 꾸역꾸역 첫차를 기다리고 을지로 3가에서 3호선을 갈아타 종점인 대화역까지. 중간중간 울렁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역에 내려 오바이트를 했으나, 그래도 왔다. 집에 왔다.

엊그제 같다. 주량도 모른 채 20살의 패기로 술을 들이붓고, 날씨개념도 없이 입고 간 옷 덕에 울렁거리던 속과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집으로 향하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역에 수차례 내려 속을 비워내고 다음 차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가. 정말 엊그제 같다. 근데 벌써 나는 25살을, 친구들은 26살을 기다리고 있다. 4년만 있으면 서른이다. 말도 안 된다.



만 19세의 신입생이었던 나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말도 많고 쓸데없는 것에 시끄러운 웃음을 뱉고 해픈 오지랖에 방방방 언제나 들떠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또 1년을 보내고 1년간의 휴학을 선택했다. 이 길이 맞는 건가-싶어서. 그러다 복학 후 대면 대면했던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에 대답을 하려는데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그때 그 시끄럽고 정신없던 ㅇㅇ이 맞아? 꼭 다른 사람 같다. 지금보다 훨씬 더 활기찼던 것 같은데"


교수님의 물음에 나는


"그건 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남들을 재밌게 해주는 게 좋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재밌는 애'로 불리고 있었는데 그게 참 지치더라고요. 그건 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 그냥 저인 것 같아요 교수님."


그러자 교수님은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라고 하셨다. 감사했다. 그 말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됐었다. 나를 결코 '어떤사람'으로 정의내리기에 나는 너무 많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진짜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에게 교수님의 한마디가 너무나 명쾌한 촛불이 되어주었다. 밝게만 행동하다 보니 내가 밝은 사람이 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어두운 순간도 밝게 덮어버려야 하는 그 노력이 나를 너무나 지치게 했다. 지금은 별 다를 것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갖고 싶던 욕심도 내려놓고, 굳이 밝은 척 활기찬 척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근데 또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때가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아-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섭다. 무엇이 나의 생각을 바꾸고 사상을 바꾸고, 무엇이 '나'를 바꾸는지 알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옳은 것인지 혹은 행복한 것인지. 끊임없이 헤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들이 두렵다. 나이에 쫓겨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게 될까 봐서 그게 또 겁이 난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은데, 그게 내 진짜 꿈인데 주변에 흔들리고 나 스스로에게 흔들릴까 봐 그게 좀 두렵긴 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건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한 어둠 속에서 무한한 계단에 발을 딛으며 한걸음 한걸음 오른다는 게 조금 무섭긴 하다.

지금의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술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예고를 준비했고, 예고에 떨어졌음에도 미대에 갔고, 미대에 가서 글쓰기에 덜컥 반해, 디자인을 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길지 않은 시간 그리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편집회사에서 일도 했다. 지금은 뭘까.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과연 첫 차를 기다리던 추운 3월, 건대입구역에서 울렁이는 속을 견디지 못해 그 새벽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지긴 한 걸까? 이 순간도 지나가면 결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좋은 것인지 별것이 되는 순간이 좋은 것인지 그에 대한 답도 정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넉넉하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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