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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Nov 28. 2016

더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은 곧장 내 마음의 통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은 곧장 내 마음의 통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해서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다는 말은 그저 드라마나 영화속에 나오는 극적 전개를 위한 악세서리일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쉴 새 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하다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저 깊숙한 안쪽부터 쿡...쿠-욱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저릿하게 올라온다. 이유모를 답답함과 함께.



두리를 만난건 작년 6월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작은 푸들아가를 입양해왔었는데, 가정입양을 사칭한 강아지농장에서 태어난 아가였다. 난 그 사실을 몰랐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채 한달간을 병원만 들락날락거리며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친 그 작은 푸들아가를 보내줘야만 했다. 그 후로 정확히 4년 반 만이었다. 두리를 만난게.

뚜렷한 입양 계획이나 몇달간의 골돌한 생각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에 혼자있는 시간이 많은 나를 위해 또는 갱년기로 우울해하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아빠의 작은 선물이었다. 물론 두리를 선택한건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때부터 푸들을 좋아했다. 그것도 갈색의 꼬불꼬불한 털을 가진 푸들. 아마도 유치원때 난생 처음으로 키웠던 강아지가 갈색 꼽슬털의 푸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어찌됐든 두리는 첫눈에 들어온 아이는 아니었다. 나를 보며 꼬리를 치고 '나를 데려가 주세요' 하는 원색의 발랄함을 보여주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저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있었는데, 그게 또 덩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컸다. 얌전히 있던 두리를 안아주자 쉴새없이 나를 핥고 깨무는데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작년 6월. 여름의 바람냄새가 솔솔 날 그때. 두리는 나에게 왔다.



아- 여름의 바람냄새가 나더니 훅-하고 여름이 찾아왔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되고, 두리를 사랑으로 가득채워줄 고민들만 나날히 늘어갔다. 두리의 이런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게 좋을지, 나의 어떤 가르침들이 두리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해줄 수 있을지.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무엇을 먹으면 좋지 않은지. 나의 대학시절 마지막 여름방학은 온전하게 두리의 것이었다. 칭얼거리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돌보는 것처럼, 밤낮 할 것 없이 온통 두리가 나의 삶의 이유라도 된 듯 했다.



그 일이 터진건 작년 12월이다. 그러니까 내가 입사를 막 준비할 적에. 요즘은 더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알 법하다. 강아지에게 혹은 개에게 산책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급하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어느 저녁, 자소서를 마무리하다가 두리의 산책을 생각했다. 산책을 하러 나갔고, 두리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잔뜩 신이 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마무리할 일이 머릿속에 그득했던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게 그 상황의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때였으면 안고 건넜을 횡단보도에서 일이 터졌다. 같은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아버지에게 갑작스럽게 흥분한 두리를 제지하려 끈을 당긴것이, 두리에겐 예측하지못한 상황이었고 그 상태로 발을 헛디뎌 부러지고말았다. 아- 사실 이 이야기는 내 기억속에서 지울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싶을 정도로 생각하고싶지않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내 다리가 부러졌으면, 내 팔이 부러졌으면. 그 때 나가지 않았더라면, 횡단보도를 건널때 두리를 안았더라면, 내가 그때 줄을 당기지 않았더라면. 회사에서 운좋게 면접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두리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수술비는 터무늬 없이 비쌌고, 그 비싼 수술을 하고도 후유증이 남는다는 글들이 온 커뮤니티에 남발하고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원들을 돌고돌아 양심있는 의사를 딱 한분 만났는데, 결국은 보호자의 선택이라 했다. 나는 선택했고, 지금에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절대.

두리는 깁스로만 두어달만에 완벽하게 골절을 회복했다. 뼈가 엇갈린채 부러졌음에도 기적적으로 곧은 일자로 회복이 되었고, 다른쪽 다리와 길이가 차이난다거나 하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새 통증과 불편함에 몸을 이리 저리 뉘우지도 못하는 두리를 안고 앉은채 잠을 청하기도 했고, 뼈에 좋다는 닭발을 한바가지 사다가 푹 고와 곰탕으로 수차례 먹였다. 그저 두리의 다리가 곧게 붙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뛰는걸 좋아하던 두리가 온전하게 넓은 잔디밭을 뛰어놀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달만에 두리는 완벽하게 완치가 됐다. 긴 깁스를 끝마치고 최종적인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던 병원에서의 기다림은 이로 설명할 수가 없다. 손 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흐른채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 '제발 제발...'



첫 미용을 한 두리


천천히 재활을 시작하고 다시 조금씩 땅에 발을 디디고. 지금 두리는 날라다닌다. 아, 말이 너무 길어졌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음..아마도 두리를 사랑하게된건 운명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고있는 두리를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수 도 없이 속으로 되뇌이며 곤히 잠이 든 두리를 바라보는 순간이, 그 순간이 나에게는 천국이다. 어느순간부터는 시중에 판매하는 간식들보다 직접 재료를 사다 간식을 만들어주고, 간식을 주는 일보다는 넓은 공원에서 두리를 뛰어놀게 해준다.



천일홍이란다 아가

두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간혹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그 저릿함은 하루종일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일수도 있고, 좋은곳에 더 많이 데려가지 못하는 미안함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더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언젠가 마주할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기라도 한다면 저릿한 마음은 끝도없이 아파온다. 더 좋은 무언가를 해주고, 더 의미있는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싶다. 같이 있는 매 순간순간 두리를 사랑해주고, 떨어져있는 순간에도 두리의 행복을 떠올린다. 내가 너에게 얻는 이 형용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행복에 비해, 너는 나와 함께여서 행복할까? 내가 두리로 인해 느끼는 행복의 반이라도, 아니 그의 반이라도 두리가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바라고 또 바란다.


아, 꿈속에서도 나와 함께 뛰놀고 있을, 내 옆에 곤히 잠든 두리를 보고있으면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더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더 사랑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너무나 사랑하면 가슴이 저릿해온다. 아마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라면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사랑은 종종 이렇게 고통을 선물하기도 한다. 두리를 더 이해하려 노력하는것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것을 안다. 작은 행동들을 이해해주고 그에 맞는 사랑을 주는것이 내가 두리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언제나 함께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고있는 두리의 옆에서 작은 일기를 남긴다.

사랑하는 나의 천사 두리야. 언제나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렇게 내 곁에 있어줘. 네가 나의 큰 행복이듯, 나 또한 너의 행복이길 바란단다. 꿈에서 보자 나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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