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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Dec 22. 2016

낯선곳에 떨어져봐야지만 느껴지는 익숙함의 풍미를 아는가

오랜만에 보름간의 긴 여행을 떠나왔다. 2013년 2월 첫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어언 4년 만인데, 첫 유럽여행 후 '언젠가는 꼭 다시 가야지'했던 말들이 그 4년을 이끌어온 듯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여행 전날 짐을 정리하고 이른 새벽 집을 떠나 공항으로 가는 길 까지는

사탕을 손에 쥔 아이마냥 설레기만 한데, 좁은 공간에서의 긴 비행을 지나 낯선 이국 땅 위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이면 온갖 불안과 걱정들이 덮쳐온다. '소매치기가 많다던데'하는 걱정에 가방을 부여잡고, '공항버스를 타러 나가는 출구가 이쪽 같던데'하며 그림 같은 언어들로 된 이정표와 깜깜해진 바깥이 몰고 온 두려움에 발을 구른다. 숙소는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지하철과 버스는 잘 타고 다닐 수 있을지. 온갖 걱정과 불안 투성이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새로운 나라를 누비며 'see'하는 순간들 보다도 어둑해진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장 가볍고 편안하다. 



그 모든 것들의 풍미를 수천 킬로를 날아온 이국 땅에서야 느낄 수 있다.

일상에 지쳐 떠나온 여행도 일상과 비슷해지기란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설레기만 했던 새로운 나라. 그 나라의 어느 곳을 가도 들려오는 소리라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과 익숙하지 않은 클락션 소리들뿐인데 그게 참 나와 맞지 않는 음식들을 먹은 것처럼 거북하기까지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들로 서-나흘을 보내고 나면 문득 한국 집이 그리워진다. 익숙한 동네 거리, 자주 찾던 단골 카페, 두리와 하던 집 앞 공원의 산책과 나만의 방식으로 어지러웠던 나의 방. 그 모든 것들의 풍미를 수천 킬로를 날아온 이국 땅에서야 느낄 수 있다.


아, 이토록 낯선 공기와 흙 위에서만 느껴지는 온전한 나의 나라. 그 흙냄새를, 그 향기의 풍미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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