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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Dec 27. 2016

오늘밤은 작은 알사탕과 함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찾아올 작은 기쁨

4년 하고도 10개월 만에 유럽여행을 떠났다.


설렐 줄만 알았던 비행길은 너무나 고단했다. 좁은 공간에서 잠도 오지 않는 10시간의 비행 2시간의 경유 그리고 또다시 3시간의 비행은 너무나 힘들었다. 뮌헨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한데 낯선 언어와 공간들이 신난다기보단 두렵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를 잘 찾아가 짐을 정리한 뒤 숙소에서 먹을 것들을 사러 역 근처의 마트로 갔는데 이게 웬걸. 단 한 번도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당당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나에게 뜻밖의 인종차별이 찾아왔다. 치약을 고르고 있던 나를 툭툭 치며 나에게 독일어로 소리를 치는 여자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별 것 아니게 넘겨~’ 혹은 ‘그냥 무시해’라는 말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대놓고 소심하고 예민하다.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바글대던 마트에서 온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동양인인것이 억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뜬 다음날 즐겁게 그리고 새롭게 뮌헨을 맞이했다. 말하자면 길고 많다. 도착했던 첫날 일어난 인종차별을 시작으로 하루에 한 번씩. 그 짜증 나는 기억을 묻으려는 나에게 꼭 반드시 찾아왔다. 물론 뮌헨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비엔나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던 중 마주 오던 한 남자는 내 얼굴을 보며 'xxck you’ 라며 대놓고 욕을 하고, 길게 줄을 늘어선 한 박물관의 화장실에서는 내가 나온 칸에 들어가지 않고 옆 칸의 외국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여자도 만났으며, 들어간 음식점에서는 홀에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음에도 화장실과 같이 있는 구석자리에 앉힌 후 주문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비단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나뿐만이 아닐 것 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비참한 기분을 묻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헨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호텔 옆 작은 버거집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줬고 이곳에서의 여행은 즐거웠는지 물어봐주었으며 잘츠부르크로 떠나는 기차를 타러 간다는 나의 말에 가게를 나서기 전, 기차에서 먹으라며 손수 만든 파운드케이크를 선물했다. 거기에 나는 몇 개 남지 않았던 포켓 초콜릿을 한 움큼 쥐어 아주머니에게 주며 뮌헨을 다시 오게 된다면 반드시 다시 오겠다는 말로 아쉬운 만남을 뒤로한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찾아올 소소한 행복들을 기다리며.


사실 행복함은 일상 속에 많지 않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작고 소소한 행복들로 힘들고 고단했던 일들과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다 생각한다. 자주 찾아오는 행복이 아니기에 더더욱 값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로 힘든 시간들을 꿀꺽 삼키고, 힘껏 밀어내고, 눈을 꾹 감은채 버텨왔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찾아올 소소한 행복들을 기다리며.

언젠가 이런 생각도 했던 적이 있다. 밤에 잠을 청하려 눈을 감기 전 5분만이라도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하루였어도 그 하루는 꽤 괜찮은 하루라고. 그리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유희열은 JTBC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에서 누군가가 ‘결혼이 어떤 것이라 생각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처음 만나 푸릇푸릇하던 아내가 발 뒤꿈치에 하루의 편린이 다 묻어있는 채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떄의 쓸쓸함을 느껴야 한다’며 일상의 고단함을 그대로 공유하는 것이라는 말로 ‘결혼’을 이야기했다. 365일 중 좋은 5일로 그 쓸쓸함을 견딘다고.


아마도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떠지지 않는 눈을 안고 묵은 걸음을 옮겨가며 간 회사에서는 상사의 쓴소리나 거슬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들이 못내 적지 않은 불안과 고통과 짜증 혹은 속상함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퇴근 후에 만나는 친구와의 수다에, 목 넘김이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묻은 불안들을 툭-툭 털어내고 내일 올 오늘의 일들을 조금 걱정하며 잠에 들 것을 나는 안다. 물론 모든 일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들에 비유하면 작은대로, 큰 일들이 비유하면 큰대로. 상대적으로 불행에 비해 작은 크기의 행복들이 그 크고 무거운 불행과 걱정들을 덮어준다. 쿨쿨 잠에 빠질 수 있도록.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나는 오늘 당신이 잠들기 전 5분이 달콤한 사탕같았으면
좋겠다. 

4년하고도 10개월만에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났던 유럽여행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처음부터였다. 다짜고짜 나에게 소리치는 모르는 여자때문에 큰 마트에서 조롱을 당했고 걸어오던 좁은 골목길에서 이유모를 욕을 온 얼굴로 맞아야했으며 내가 나온 화장실칸에 들어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던 여자에게 ‘왜 내가 사용한 곳은 사용하지 않냐’ 따져 물을수도 없었다. 하지만 여행길에 먹으라며 파운드케익을 챙겨준 버거집 아주머니가 있었기에,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을때 길가의 엄마와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던 어떤 할머니가 있었기에 그토록 두껍고 불편했던 첫인상을 걷어낼 수 있었다. 여행도중 유독 힘들었던 날도, 숙소에 돌아와 먹는 요거트에 블루베리면 싹 잊혀지곤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나는 오늘 당신이 잠들기 전 5분이 달콤한 사탕같았으면 좋겠다. 혹은 진짜로 작은 알사탕은 먹어보는것은 어떠한가. 하루종일 먹었던 맛없는 음식들을 모두 모마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작은 알사탕 하나가 당신이 달콤한 꿈을꾸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일 찾아올 소소한 행복을 위해 또는 오늘도 맘에 들지 않은 음식들을 먹으며 잘 버텨온 하루를 달래기 위해. 그 끝의 오늘 밤. 잠들기 전 충치걱정은 창 밖으로 던진 채 작고 달콤한 알사탕과 함께 잠드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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